한발 앞선 광양여자축구, 국가의 희망으로 발돋움
한발 앞선 광양여자축구, 국가의 희망으로 발돋움
  • 지정운
  • 승인 2010.10.04 09:36
  • 호수 3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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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무슨 축구를” 부정적 인식 여전…선수 수급 숙제로 남아

▲ 모교 환영식에 참석한 광양여고 백은미(좌)선수와 심단비 선수
광양의 딸들이 세계 제패의 주역이 되면서 광양이 여자축구의 메카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광양여고는 국가대표 선수를 2명이나 배출하면서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은 물론 축구 명문으로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하며 광양 여자 축구의 전환기가 도래한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월드컵 우승을 가능하게 한 광양여자 축구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
척박한 토양에서 알찬 결실을 맺은 광양여자 축구의 현 주소와 강점 그리고 보완해야 할 점들을 살펴봤다.

◇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연계시스템 구축

현재 우리나라의 여자축구팀은 초등학교 18개팀, 중학교 17개팀, 고등학교 16개팀, 대학교 6개팀, 유소년클럽 1개팀, 실업팀 7개 등 모두 합해 65개 팀이며, 선수는 1,450명에 불과하다. 17세 이하 선수로 국가대표에 선발돼 세계를 제패한 선수는 전국 고교등록 선수 345명 중 21명이며, 2명이 우리 지역에서 배출됐다. 반면 일본은 등록선수 3만6000명, 독일은 105만 명이 있다. 하늘과 땅 차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여자 축구의 저변과 인프라는 이들 나라에 비해 뒤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광양의 딸 들이 포함된 국가대표는 이들과 겨뤄 승리를 쟁취하며 우리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보여줬다.
여자 축구의 저변과 인프라가 일천한 우리나라에서 광양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상대적으로 일찍 여자축구에 관심을 갖고 투자했기 때문이다.

전남지역에서 여자축구팀이 있는 곳은 현재 4개 학교에 불과하며 이중 광양에 3개 팀이 있다. 중앙초등학교와 광영중학교, 광양여고 축구팀이 바로 그들이다. 중앙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접한 축구 꿈나무들은 광영중학교를 거쳐 광양여고로 진학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축구를 익혀 나간다. 나름대로 선수 수급과 육성을 위한 시스템이 학원 스포츠를 바탕으로 타 지역에 비해 갖춰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 광양여고 축구부

이번에 월드컵에 출전한 백은미, 심단비 선수도 초등학교부터 한솥밥을 먹으며 자란 광양의 딸들로, 중앙초등학교를 나와 광영중을 거쳐 광양여고로 진학한 경우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연계시스템을 갖춘 광양이 전남의 유일한 희망이요, 가히 국가의 희망이라 불러도 좋을만 하다는 점에서 지역민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 성적의 원인은 지도자들의 열정과 엘리트 체육의 성과

중앙초등학교는 2000년 4월 창단해서 지금까지 광양여자축구의 산실이 되고 있다. 이 학교는 전국대회 준우승 4회, 3위 7회의 기록을 갖고 있다.

광영중학교는 1997년 창단, 2002년 소년체전에 여자축구 종목이 시작되면서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6년 추계여자선수권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더니 2007년 여왕기 전국대회 우승에 이어 2008년에는 소년체전 금메달까지 따는 기염을 토했다.

이번에 월드컵 우승을 이룬 백은미 선수가 당시 주전으로 뛰며 대회 MVP에 선정된 대회이다.
광양여고는 90년대 초반 최고의 전성을 구가하며 여자축구 명문고의 이미지를 구축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과거의 화려했던 성적을 내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 1992년 제47회 전국중고축구대회와 제73회 전국체전에서 우승하며 2관을 달성한 것이 최고의 성적으로 남아있다. 이후 93년 전국체전과 2000년 울산 처용기 준우승을 비롯, 9회의 전국대회 3회 입상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광양 지역 여자 축구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현역 지도자들은 좋은 성적의 비결을 지도자들의 열정과 엘리트 체육의 성과, 주변의 관심을 꼽는다.
이형중 광양중앙초등학교 교장은 “초등학교는 선수들을 선발해 팀을 꾸리는 일이 가장 힘들다”면서 “선수 수급을 위해 여러 학교와 학부모를 만나고 설득하는 어려운 일들을 꾸준히 해오는 지도자들이 있기에 광양여자축구의 오늘이 있었다”고 말한다.

광양지역에는 자라나는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열정을 쏟는 지도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형중 교장은 이러한 사례로 광영중학교 골키퍼 코치로 일하는 정봉삼 코치와 중앙초등학교 김진각 체육부장 등을 거론했다. 정봉삼 코치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축구에 미친 사람으로, 이런 사람이 있어야 축구가 발전한다”고 이 교장을 거침없이 말했다.

정봉삼 코치는 엘리베이터 전문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축구에 인생을 건 경우다. 그는 지역에서 9년 째 여자축구팀 골키퍼 코치역할을 수행중인데, 지금도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골키퍼들을 찾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런 지도자들이 있기에 광양 여자축구의 오늘이 가능했다.

또 한가지는 학교 엘리트 체육의 성과라는 분석도 설득력을 가진다. 정봉삼 코치는 “남자의 경우 저변이 넓고 경쟁이 너무 심해 어지간히 해서는 성적을 내기 어렵다”며 “하지만 여자축구는 세계적으로도 아직 수준

이 비슷하기 때문에 조금만 노력하면 뛰어난 성적을 거둘수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지역사회와 학교의 관심과 지원도 광양이 타 지역에 비해 훌륭하다는 것이 여자 축구계 인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 “여자가 무슨 축구냐”…선수 수급문제가 가장 큰 고민

하지만 아직 광양 여자축구가 나아갈 길은 멀다.
가장 어려운 점은 선수 수급의 문제다. 올해 광영중학교는 중앙초등학교에서 2명의 신입생을 받았다. 그만큼 초등학교부터 선수를 뽑는데 애로사항이 많다는 것을 반증한다.

사실상 여자 축구에서 초등학교는 선수수급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이 장차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의 경우 선수가 없을 경우 강진이나 고흥 등 멀리에서 전학을 해야 하는데, 학부모들이 어린 자녀를 초등학교 때부터 멀리 보내려하지 않는다. 또 한가지 어려운 점은 아직까지도 시민들의 정서가 여자 축구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이 축구를 통해 진학의 꿈을 꾸게 되고 이는 더 많은 지원을 필요로 하게 된다.
여기에 훌륭한 지도의 부족도 큰 골칫거리이다. 축구 지도자의 생활안정 기반이 조성되지 않기 때문에 끊임없이 이직이 발생하며, 능력을 인정받으면 더 나은 조건을 찾아가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광영중학교의 기은경 감독도 이 학교에서 7년째 어려운 길을 가며 광영중을 여자 축구의 강호로 조련해 낸, 국내에 몇 안되는 여자 축구 지도자이다. 하지만 그도 어려운 현실 앞에서 요즘 고민이 많다. 지도자로서의 능력이 알려지며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팀이 생겨났고, 이곳으로 거취를 옮기는 것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

최근 언론에 여자축구팀이 있는 학교의 코치진 월 급여가 120여 만원 수준이란 보도가 나오기도 한 것과 비춰 볼 때 이는 학교 축구의 어려움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볼 만하다.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수적이다. 우리 지역의 경우 여자 축구팀이 있는 학교에 각계 각층에서 다양한 형태로 지원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광양여고 축구팀의 숙소만을 보더라도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세계 우승의 감격을 이뤄된 영웅이  탄생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일시적인 관심과 지원이 아닌, 광양 여자축구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지원책 마련과 함께, 여성의 특성을 알고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할 수 있는 지도자를 축구 협회나 연맹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육성해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