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한 평생 민주화 운동…4.19에서 정권 교체까지 파란만장한 삶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한 평생 민주화 운동…4.19에서 정권 교체까지 파란만장한 삶
  • 이성훈
  • 승인 2012.07.16 09:56
  • 호수 4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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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간 캐나다 이민, ‘민중신문’ 창간해 해외서 민주화 투쟁

지난 11일 지병으로 별세해 13일 서울 4.19국립묘지에 안장, 영면에 들어간 정철기 전 국회의원은 4.19에서 정권교체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정 전 의원은 1937년 4월 15일 광양읍 사곡리 본정마을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광양중 1학년 재학중 6.25 전쟁이 일어나자 농사일을 하기 위해 학교를 중단했던 그는 3년이 지나 광양중에 야간부가 생기자 다시 학업을 계속했고 주경야독하며 우수한 성적으로 중학교를 마쳤다.

정 전 의원은 이후 부산에 살던 누나의 도움으로 경남고에 입학한다.

정 전 의원이 경남고에 입학할 당시 전국 94개 중학교에서 5등 안에 드는 학생들만 응시할 정도로 전국 최고 명문고였다.

지방고 출신 최초로
서울대 사범대 학생회장

정 전 의원은 1959년 서울대 사범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학생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서울대 입학 후 농촌사회연구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에 취임하며 활발한 학생운동의 서막을 알렸다. 여름방학이면 농촌계몽 활동에 참여하기도 하고 고향에 내려와 4H운동을 했던 것.

정 전 의원은 1960년 4.19 학생혁명에 적극 가담해서 당시에 학생사회에서 활발했던 새생활 운동, 한미 행정협정개정운동 등에도 적극 참여했다.

이런 활동은 주위의 친구들로부터 학생회장 출마를 적극 권유받게 돼 그는 서울대 학생회장에 당선됐다.

정 전 의원은 학생회장 당선은 전라도 출신으로 경남고를 나왔다는 배경 때문에 영호남 출신 학생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서울대 사범대 개교 이래 지방고 출신으로는 최초의 학생회장이 되는 기록을 세웠다.

63년 대학을 졸업한 정 전 의원은 해병대에 입대해 월남파병근무까지 마치고 대위로 전역을 했다.

이후 서울대 신문대학원에 입학해 대구일보 서울지사, 전남일보 서울지사 등에서 기자로 활동하던 중 1971
년 신민당 김대중 대통령 후보실 기획비서로 정치에 첫발을 딛게 된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 선거 패배 후 어수선하던 정국이 10월 유신으로 인해 일체의 정치 활동이 금지되면서 낭인생활을 하던 중 당시 캐나다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던 지금의 아내 최말연(경북 안동 출신) 여사와 결혼, 1973년 캐나다 이민의 길로 떠났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정착한 고인은 김재준 목사, 이상철 목사 등과 함께 토론토 한국민주사회건설협의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한국의 군부독재를 반대하고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캐나다서 민중신문 창간

고인은 1978년 뜻있는 동지들을 규합해서 ‘민중신문’이라는 주간지를 창간해 귀국 때까지 10여 년 동안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줄기차게 해왔다.

87년에는 중국 연변 조선족자치주와 캐나다 교포사회의 교류확대, 한국정부와의 교류에도 선도적 역할을 하며 연변대 객좌교수로 위촉 받아 중국조선족들에게 서국문명을 전하는데 선구적 역할을 해왔다.

정 전 의원은 87 대선 당시 해외 민주화 운동 경력 때문에 공항에서 추방당하는 아픔도 겪었다.

정 전 의원은 1990년 영구 귀국해 다시 한국정치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14대, 15대 연이은 공천에 실패해 꿈을 이루지 못하다가 2000년 16대에 당선돼 국회 농림ㆍ해양수산위원회 간사, 예결위 계수조정 소위원 등 활발한 의정활동을 해왔다.

그는 하지만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으로 17대 국회 입성에 실패하고 고향에 내려와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1997년 설립한 사단법인 광양만권발전연구원 원장 겸 이사장으로, 순천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좌교수, 전라남도 투자유치 고문 등으로 꾸준히 활동해왔다.

정 전 의원은 지난 2008년 2월 18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을 탈당하고 한나라당에 입당, 중대한 결단을 선택했다.

지역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바치겠다는 심정으로 한나라당 입당을 결정했지만 공천을 받지 못하자 곧바로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말았다. 

정계은퇴 후 고인은 광양만권발전연구원 이사장에 몰두하며 남은 인생 동안 지역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 정 전 의원은 반세기 이상 일관된 한국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을 정부로부터 인정받아 2010년 4.19 혁명 50주년 기념일을 맞이해 건국포장수여와 국가유공자라는 영예를 안았다.   

 


故 정철기 전 국회의원은…

△학력
1937 광양읍 사곡리 출생
1950 서초교 졸업(37회)
1952 광양중 졸업(10회)
1959 경남고 졸업
1963 서울대 사범대학 교육학부 졸업(16회)
1972 서울대 신문대학원 수료(2년간)
2001 서울대 해양정책 최고과정 수료

△경력
1962 서울대 사범대학 학생회장 및 총학생회장
1963~68 해병대 대위 전역
            (주월한국군사령부 1년 파병 근무)
1971 신민당 김대중 대통령 후보 기획비서
1973 캐나다 이민, 1990년 귀국
1978~90 캐나다 민중신문 발행인
1996 새정치국민회의 전남도당 상근부위원장
1997 (사)광양만권발전연구원 이사장(현)
1998 중국 연변대학교 객좌교수
2000~2004 제16대 국회의원(농림해양수산위 간사)
2005~06 순천대 석좌교수
2005 전라남도 투자유치 고문(현)

△시상
1968 주월 한국군 사령관 표창
1986 워싱턴 소재 한국인권문제연구소로부터
        인권상 수상
1987 온타리오주 시민문화성장관으로부터
        소수민족 언론상 수상
1987 캐나다 소수민족 작가협회로부터 언론상 수상
1999 김대중 총재 표창장
2001 순천ㆍ광양 상공회의소로부터 감사패
2003 자랑스런 광주ㆍ전남인상 수상
        (재경 광주ㆍ전남 향우회 제정)
2003 제정입법특별상(한국유권자 연맹)
2005 광양유림회 감사패
2005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 감사패
2007 광양시장 감사패(백운산 생태숲 관련)
2008 광양시장 감사패(광양항 개발 관련)
2010 대한민국 4ㆍ19 혁명 유공 건국포장 수상
2010 국가유공자 및 참전유공자

△저서
어두운 시대의 증언(민중신문 10주년 사설집. 1990)
어두운 시대 밝은 세상(대원인쇄문화. 1997)
대통령과 함께 한 사람들(도서출판 맑은물.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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