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커피의 역사
우리나라 커피의 역사
  • 광양뉴스
  • 승인 2014.01.2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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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라 식음료아카데미 로스벵
요즘 자신이 사는 집 주변이나, 회사 주변, 번화가, 문화의 거리 등 흔히 볼 수 있는 곳에서 전혀 어색해 하지 않고 당연하듯 있는 것은 커피숍이다.

이제 그곳은 어색함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고 당연한 듯 혼자만의 사색을 즐길 수 있으며,  여러 사람들과의 교류로 인해 사회생활의 친목 도모, 여가와 문화생활의 접점지가 된 듯하다.

그곳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커피이기도 하지만 이토록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온 커피가 어떻게 지금의 우리에게 친숙함으로 다가왔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하다.

커피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어떤 시대에 어떻게, 누구를 통해서 커피가 z전파되었는지 외우고 있어야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에 어떻게 커피가 들어왔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자격시험이라는 것이 교육의 과정이 되어야 하지만 현재는 교육의 목표가 된 곳이 많아 가르치는 사람으로는 통감을 한다.

대부분은 유럽에서 우리에게 수출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커피가 흔히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 이다. 커피교육을 하는 협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처음 커피를 마신 사람은 고종황제라고 한다.

고종황제로 시작점을 둔다하면 이야기는 이렇다.

1895년 을미년이 되던 해 일본은 대륙진출의 걸림돌이 되는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킨다. 을미사변 이후 일제가 한국을 압박하고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1896년 러시아 관료들의 부추김으로 자신의 궁전을 버리고 러시아 공사인 베베르와 함께 러시아로 떠나게 된다.

이때 독일 여성인 손탁을 만나게 되는데 이 여성에게 커피라는 것을 처음 접하며 즐기게 되고 일반 민가에서는 커피를 서양에서 들어온 국물이라 하여 양탕국 이라고도 하였다고 한다.

고종은 1년 후 손탁과 함께 조선으로 넘어와 현재 덕수궁에 ‘정관헌’이라는 곳을 건립하게 되는데 이곳은 고종이 연유처로 외빈들을 초대하거나 연회를 열거나 다과를 들며 음악을 감상하면서 휴식을 취했던 곳 이라고도 한다. 그 후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은 특권층만이 지녔던 커피포트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왕실을 통해 커피는 다양한 형태로 일반서민들에게 전파 되었으며 현재 커피의 문화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설이다.

독일 여성인 손탁이 1902년 ‘정동구락부’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다방을 시작하였고 1930년부터 다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며 대중화 되어 갔으며 1970년대 음악다방이라는 곳이 생겨난다.

이곳은 긴 머리에 셔츠를 입은 DJ는 신청곡을 받아 LP레코드로 음악을 틀어 주어 손님들로부터 받은 쪽지의 사연을 읽어 주었다. 1980년대부터의 커피숍은 도심이나 대학가 주택 등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시점부터 현재의 일반 커피숍의 메뉴도 선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1999년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들어서면서 밥값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지금시대까지의 커피 역사를 보면 희로애락의 긴 100년 동안 우리는 한국의 커피역사를 너무 몰라주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 ‘한국의 커피역사에 대해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의 대답은 을미사변이든 아관파천으로부터 시작되는 아픈 역사를 뺄 수없는 것 같다.

그래도 한국 커피역사의 올바른 이해가 현재 한국 커피문화를 발전시키는 밑거름 일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