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도의 지명사료<2>
금호도의 지명사료<2>
  • 광양뉴스
  • 승인 2015.03.20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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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동 래 시인·수필가
쇠몰은 대동과 내동사이에 위치한 마을이고, 쇠모가지는 대동마을 뒤 복판에 있던 산 이름이다. 소의 목 형국이라 해서 불러져 왔던 것이라 한다.

금당도는 마을에서 서남쪽에 있던 섬으로 소댕이라고도 불렀다.
소댕이(쇠머리, 소모가지) 똥 섬은 소당도 남쪽에 위치했던 조그마한 섬이었다. 이로 보면 금호도의 4개 부락마다 소에 관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 내용은 옛 지명을 마을사람들이 불렀던 명칭이라 읽기나 이해하기 난해한 말들이다.

또한 전설로 전해오는 2가지 설이 있는데, 첫째 도선국사께서 광양지역을 답사할 때 금호도를 둘러보고 남긴 기록문인 답사록(踏査錄)에 황우도강(黃牛渡江, 황소가 강을 건너는 형)형이라 기록했다.

이것은 금호도를 답사하고 나서 풍수지리학적인 관점에서 남긴 기록이며, 도선국사는 풍수지리학의 대부로 인정하는 선사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광영 도촌과 금호동으로 연결된 다리 금호교 인근에 있는 수원백씨 제실지역은 까마귀가 시체를 쪼는 형(金烏啄尸)이라는 풍수지리설에 의한 지형이라는 것이 구전으로 전해오고 있으나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위에서 열거한 역사적 사실이나 주민들이 불렀던 명칭으로 봐서 소섬이 분명하다. 다만 부르기 쉽도록 소섬이 쇠섬으로 불러졌으며 그 음에 지역민들이 부르는 어휘에 따라 쇠(牛)를 쇠(鐵)로 인식하고 1872년 광양현 지도를 제작할 때 금도(金島)라고 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당시 오늘날 제철소가 건설될 것을 예측하고 글자를 변경했다면 예언이 적중했다고 할 것이나 근자에 금자(金字)를 너무 미화한 결과라고 믿어진다.

그 후 1899년에 제작된 여산군지에 금호도(金湖島)로 표기된 것은 섬이지만 내만(內灣)에 위치해 민물 때에 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해서 호수같이 보임으로, 태인도, 금도, 길도 지명에 호(湖)자를 넣어 태인도는 仁湖島, 금도는 金湖島, 길도는 吉湖島라 부른 것이라고 추상할 수 있다. 또한 하동군 하동읍에 있는 섬호정(蟾湖亭)의 이름도 그와 비슷한 연유로 명명한 것으로 보여 진다.

다만 원주민의 말에 따라 가야산에 올라가 금호동을 바라보면 소의 형국이라 하나 지금은 광양제철소 건설을 위한 부지 조성 공사 때 그 원형을 완전히 훼손해 버렸기 때문에 가늠할 수 가없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은 금호동은 향토지 또는 금호동지(金湖洞誌)를 만들어야 한다. 그 것은 옛 금호도를 기록하고 그 다음 금호동을 기록하는 일이 하루속히 이루어져야한다.

역사는 연속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며 금호도 주민의 향수를 달래고 금호동 주민의 향토사랑과 긍지를 갖게 하는 것이 급선무라 여겨진다. 또한 금호동 주민센터 입구에 금호도와 금로동의 사적비를 수립하는 것 또한 시급하니 주민의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