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韓藥)의 약리(藥理)
한약(韓藥)의 약리(藥理)
  • 귀여운짱구
  • 승인 2007.11.01 08:58
  • 호수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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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의 과학화’란 거창한 화두가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방의 과학화는 필요하다는데 동의하면서도, 이를 주장하는 분들의 논리와 궁극적인 목표인 국민건강과의 연결고리가 서로 어긋난다는 느낌을 가지기도 합니다.

 한약의 과학적 연구는 주요 활성 성분을 밝히고 그 함량을 조사해서 동물실험과 병리실험을 거쳐 약리학적(藥理學的) 효능 효과를 알아내고 아울러 독성 연구를 병행하여 질병에 가장 유효하고 인체에 가장 부작용이 적은 성분을 찾아내어 이용해야 하는 것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 견해가 지금 시대에 아직 이르다고 판단되어, 한약의 약리는 한방의학에서는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 가를 간단하나마 살펴보고자 합니다. 

 한의사들은 방대한 한약의 성분을 다 알고 있지 못합니다. 원래 한의학에서 한약을 쓸 때는 성분을 분석해서 쓰는 게 아니라 약의 전체적인 기미(氣味, 약의 기운과 성질)를 통해서 쓰게 됩니다.
 인삼(人蔘)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인삼의 기미는 ‘맛이 달아 원기(元氣)를 크게 보(補)하고, 갈증(渴症)을 없애며 진액(津液)을 도우 되 몸의 안팎을 두루 고르게 한다(人蔘味甘 大補元氣 止渴生津 調榮衛氣)’고 했습니다. 관찰해 보면, 경쾌한 향기가 있고 맛이 좀 달며 색이 겉은 황색, 속은 흰색이며 모양은 가운데가 통통하며 섬유질은 그리 없고 주로 육질로서 진액이 많습니다. 다른 뿌리와 달리 노두 아래에 턱수가 나오고 잔뿌리가 무성하여 주근의 반대방향으로 옆으로 뻗습니다. 인삼 밭에는 한참동안 다른 작물이 되질 않습니다.

 인삼이 맛이 달아 원기를 크게 보한다는 것은, 향기가 순하고 경쾌하며 맛 또한 자극적이지 않아 생(生)으로 먹을 수 있으며, 주근(主根)에서 무성하게 나오는 잔뿌리, 그리고 삼밭에 다른 작물이 잘 안 되는 것으로 미루어 강한 ‘기(氣)’을 축적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인삼이 갈증을 없애며 진액을 돕고, 몸의 안팎을 두루 고르게 한다는 것은, 섬유질이 별로 없는 황색 육질의 뿌리가 통통하게 자라는 것과 턱수와 잔뿌리가 주근과 반대방향으로 힘차게 뻗은 특이한 모양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삼은 순한 보약으로서 계피처럼 몸을 크게 덥히지는 않으나 기운이 많으니 인삼만 쓴다면 좀 뜨는 수가 있으나 다른 약과 어우러지면 몸 어디든 가서 원기를 도울 것입니다. 진액을 도우니 어디든 마르는 병에도 쓸 수 있습니다. 피는 기운을 받아야 되니 인삼이 당연히 조혈(造血)과 순환에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기운이 떨어지면 정신, 신경도 약해지니 신경계통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삼은 여러 질병에 두루 쓰일 수 있는 약입니다.

 인삼을 고혈압(高血壓)에 썼더니 부작용이 나는 사람이 많더라는 주장과, 인삼이 혈압(血壓)을 조절하는 성분이 있어 고혈압(高血壓)과 저혈압(低血壓) 환자에게 모두 쓸 수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세계적 약리학 권위자들이 첨단장비를 동원하여 인삼의 성분을 분석하고 약리 실험을 수 없이 한 논문 결과를 인용한 것입니다. 일전에 메주가 발암물질이 있다고 했다가 다시 된장이 항암성분이 있다고 하던 식으로, 한약에 과학의 잣대를 들이 대고 섣부른 결론을 내릴 때는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인삼이 왜 효력을 내는가를 한의사의 견지로 설명하였습니다. 한의학적인 교육을 받은 한의사는 한방병리와 약리가 꼭 일치하는 줄을 앎으로 인삼 하나를 선택할 때에도 성분 분석이 아니라 그 성질과 장점을 가지고 쓰므로 고혈압에도 쓸 경우가 있으며 저혈압에도 쓰지 못할 경우가 있는 줄을 아는 것입니다. 
 이런 예를 들자면 끝이 없습니다. 한약(韓藥), 신약(新藥)을 막론하고 약이란 잘 쓰면 명약이요, 잘못 쓰면 독이 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아직 한약은 밝혀진 성분만을 가지고 쓸 상황은 아니므로 역시 한의사의 진단 하에 써야 안전하다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