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숲 속의 공부
잠자는 숲 속의 공부
  • 광양뉴스
  • 승인 2015.07.24 21:51
  • 호수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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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순천대학교 학생지원과 조교
이지훈 순천대학교 학생지원과 조교

 마르틴 하이데거의 『숲길』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수풀은 숲을 지칭하던 옛 이름이다. 숲에는 대개 풀이 무성히 자라나 더 이상 걸어갈 수 없는 곳에서 갑자기 끝나버리는 길들이 있다. 그런 길들을 숲길이라고 부른다.

길들은 저마다 뿔뿔히 흩어져 있지만 같은 숲 속에 있다. 종종 하나의 길은 다른 길과 같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보일뿐이다. 나무꾼과 산지기는 길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숲길을 걷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다.” 다른 듯 닮아 있는 길들이 갈래지어 나뉘는 숲길. 그 길들은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루 듯 결국 그렇게 모두가 숲 속에 있다. 흩어진 듯 갈라져 있지만 매듭지어지지 못한 길들마저 한 숲 안에 있는 것이다. 선녀를 만났던 나무꾼을 막연하게 동경하는 마음에 출장 차 들른 제주에서 시간을 내어 생태탐방을 해보기로 했다. 벌써 수차례 왔다간 제주는 더 이상 새로울 것이라곤 없어 보였지만, 이번 제주 여행은 전혀 새로운 처음 만나는 낯선 곳이었다.

푸른 바다와 해변, 해녀들의 물질 성산일출봉과 한라산 등 웬만한 제주의 명소들을 다녀온 독자라면 더더욱 이글에 주목하길 바란다. 새로운 제주 혹은 새로운 안목을 갖는 방법을 소개한다.

 그동안 제주에서 바다만 바라봤었다면, 그것은 완전히 제주를 등지는 행위이다. 나 역시 그동안은 제주에 와서 실제로는 제주를 등지고만 있었다. 제주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제주는 항상 등 뒤에 있었다. 출장때 읽으려던‘섬데이 제주’라는 책 덕분에, 바다를 등지고 제주를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그랬더니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제주도가 나타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제주는 처음부터 그 곳에 있었고, 새로운 것을 보는 눈을 갖게 되었다.

제주말로 곶자왈이라고 불리는 덩굴 숲의 송악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중이다. 숲 안에는 다양한 종이 섞여 살기 때문에 그만큼 햇빛을 둔 경쟁도 치열하다. 아이비로 알려진 송악은 아래쪽 잎이 세 갈래로 나눠진 모양인데, 위로 갈수록 잎이 둥글고 넓다. 햇빛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스스로 면적을 늘린 것이다.

숲 입구에 서로 엉킨 덩굴이 보였다. 누가 일부러 꼬아 놓은 것일까? 시계 반대방향으로 감아 오르는 덩굴은 칡이고, 시계 방향으로 감아 올라가는 덩굴은 등나무이다. 때문에 칡과 등나무가 함께 있으면 서로 엇갈리고 부딪힐 수밖에 없고 하나가 강해지면 하나가 죽을 수밖에 없다.

‘갈등’이라는 말은 칡 갈葛, 등나무 등藤에서 온 말이다. 서글픔이 느껴졌다. 자신의 삶을 위해 다른 것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에, 갈등이란 말은 부정적인 말처럼 들리지만 한편으로 본인의 생존을 위해 애쓰는 우리의 삶과 닮아 보여 측은한 마음도 들었다.

겨울에 그 향이 천리까지 간다고 하여 천리향으로 더 유명한 백서향의 향기를 맡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이 꽃나무의 향기가 그렇게 짙은 것도, 이 꽃의 생존과 큰 연관이 있다. 백서향의 꽃은 1~2월에 피는데 겨울에는 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멀리까지 향을 퍼뜨리는 것이다. 숲은 식물들은 이렇게 저마다의 생존 방식으로 살아남아, 살고 꽃 피우며 숲을 이루고 있다.

 비자림과 절물휴양림, 사려니 숲길과 환상숲까지 이르는 제주의 숲에서 보았듯 식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다른 식물들과 공존해왔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저마다의 방어기제도 갖고,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향도 가지면서 말이다. 숲이 아름다운건, 오늘에 가장 충실한 하나하나의 식물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가장 빛나는 오늘을 사는.

제주의 진면목은 아직은 온전히 남아 있는 자연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주에 열광하는 것도 결국 그대로 둔 자연 때문 일 것이다. 당신이 가는 제주 어디에서건 한 발짝만 더 들어가면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아름다운 자연이, 숲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딱 한발짝만 더 내딛으면 된다.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말처럼, 당신 앞에 두 갈래 길이 있다. 누구나 가는 알려진 길과 남들이 가보지 않아서 숨어 있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