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윤동주 백일장 대상작(전라남도교육감상)] 존재의 무게
[제13회 윤동주 백일장 대상작(전라남도교육감상)] 존재의 무게
  • 광양뉴스
  • 승인 2020.09.25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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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현 보성고 2학년 3반

그 날은 중학교 2학년의 첫날이었다. 아직은 쌀쌀했기에 나는 교복 위에 패딩을 걸치고 책상에 머리를 대고 자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친구들이 점점 교실로 점점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고 책을 펴들었다. 나는 활동적이지도 외향적이지도 않았기에 내가 좋아하는 김영하 작가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보며 쌀쌀한 추위에 맞물려 한층 강해진 쓸쓸함이 몰려왔다. 책은 즐거웠다. 책에는 나를 상처 입힐 그 무엇도 없었고 나를 실망시킬 요소도 없었다. 그 소설에는 정상적인 인물이 없었다. 모두가 미쳐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흥미가 끌리고 점점 빠져들게 된다. 그것이 책이라는 가상의 세계이기에, 그리고 현실에 환멸을 느끼던 나에게 그런 책에 더욱 빠져들었다.

개학식은 설렁설렁 진행되었다. 애초에 그렇게 많은 학생이 있는 학교도 아니고 바뀔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내 스스로가 학교에 관심이 없었다. 사는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도 않고 그때까지 나는 너무 절망만을 느끼고 죽음에 너무 가까운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멍하게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역사 선생님이었다. 재밌고 유쾌하신 분이셨지만 그런 선생님도 내 고독과 환멸을 느끼지 못하였고 또한 내 기분을 유쾌하게 하지도 못했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어느새 첫국어시간이 되었다. 국어라고 해서 딱히 흥미가 돋는 것은 아니었다, 1학년 때도 실망감만 안겨줬던 수업이 많았기에 시간을 축내기 위해 멍하니 앉아 저 유유히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며 ‘하암’하고 하품을 연신 내뱉었다.

‘또 시작이구나,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내가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빨리 움직여 내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야, 머릿속에서 떠다니는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멈출 수가 있을테니까.’

문이 열리고 국어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나는 또 지루한 수업이 시작하겠거니하며 앞을 바라보았지만 내 앞에는 처음 보는 선생님이 서 계셨다. 국어 수업이 아닌가? 아니면 뭔가 잘못된 건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반가워. 국어 선생님이고 양혜단이라고 한다.’

국어선생님이 바뀐 지도 그때야 처음 알았다. 흥미가 없었기에 보지 않았고 관심이 없었기에 무심했던 것이다. 하지만 딱히 영향력을 주는 시간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국어선생이 바뀐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지루한 수업이 재밌게 느껴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나는 턱을 궤고 잘 준비를 했다. 수행평가 안내만 잘 듣고 잘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예상외의 반응이 나를 충격에 빠지게 만들었다.

‘일단 시험은 무조건 서술형으로 할거야, 그리고 앞으로 수업시간에는 활동지 대신에 자기가 글을 써서 검사받는 형식으로 진행되겠지.’

정말로 충격적이었다. 지금까지 받아왔던 어떤 교육도 그것과는 달랐다. 신선한 충격이 심장의 박동을 요동치게 만들었고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앞으로 다가올 날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수업은 더욱 신선했다.

그저 글을 썼다. 글을 읽고 우리가 글을 썼다. 다른 친구들은 그것을 탐탁치 않게 여기고 흥미가 없는 듯이 보였지만 나는 그때 확인했다, 지금이 내 인생이 바뀔 타이밍이다.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괴로움과 무게감을 덜어낼 기회다, 라고 내 마음이 강력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글을 써내려 가면 내 마음이 동요되었다. 꺼져가던 심장이 이 창작을 열망하기 시작했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내 눈가에는 생기가 돌았다. 무너져가던 존재, 무거움만이 느껴지던 인생이 단 하나의 인간에 의해 수복되어가기 시작했다. 글쓰기, 국어선생님, 문학, 책. 그것들이 나를 감싸고 나는 점점 황홀경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국어시간이 끝나고 학교를 떠나가면서도 나는 그 충격을 잊을 수가 없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나는 국어시간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책상에 앉아 책을 펴들었다. 피곤함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책이 재밌었다, 아니 글이 너무나도 흥미로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국어 시간만이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국어시간이 돌아왔고 나는 다시 황홀함에 젖어 글을 이어나갔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그 글을 읽고 등장하는 편지의 내용을 써보는 것이었다. 조별활동이었지만 나는 독립적으로 내 글을 써내려갔다. 애초에 다른 친구들은 흥미가 없어보였다.

~어머님, 저는 떠납니다. 그렇기에 이 편지를 남깁니다. 당신을 처음 봤을 때부터 어쩌면 예정되어 있는 일인지도 모르지만,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설령 남의 아내라 하고, 그 남이 저에게 있어 포기하면 안 되는 선이라고 해도,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라앉지를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루어져서는 안되는 사랑이죠. 저는 당신을 잊기 위해 떠납니다. 몸은 멀어졌지만 가슴은 아직도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을 잊지 않겠지만, 당신은 저를 잊어주십시오. 그것이 저에게 있어서는 당신을 사랑한 죗값이 될테니까요.~

폭풍과 같이 써내려갔다. 펜을 놓고 강렬하게 뛰는 심장을 억누르면서 너무나도 극심한 그 황홀함과 행복감에 나는 잠시 영혼을 내려놓은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것을 발표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황홀함을 맞이했다.

‘잘썻네, 그 조는 거의 우현이가 썼지. 글솜씨가 좋다.’

‘인정’ 그리고 ‘찬사’ 주위에서 울리는 웅성거림에 나는 천국을 맞보았다. 지금까지 느껴왔던 내 존재에 대한 상실감이 마모되어 내 삶이 가벼워지고 내 존재가 빛나기 시작했다. 사춘기에 방황하던 내게 있어 그 일련의 사건들은 내게 통쾌하고도 신선하고 환상적인 경험들을 하게 해주었다. 앞으로의 인생에 목적을 찾은 기분. 삶이 무거움으로 죽음이 가벼움으로 역전되어 있던 내게 삶의 희망을 안겨주었다.

나는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어 집에 돌아와 글을 썼다. 이렇다 할 것 없는 싱거운 글이었지만 그래도 내 감정을 순수하게 들어낸 내 인생 최초의 문학이었다.

~강렬하다, 너무 강렬하다. 눈가에는 눈물이 맺히고 심장에는 열망이 가득하다. 나는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가. 고작 글 때문에 나는 이런 감정을 느끼는가. 아니... 고작 글이 아니다. 나는 바뀌고 있다.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영웅의 일대기가 오늘 하루만에 이루어졌다. 시련에서 벗어나서 구원자를 맞이하고 성장하고 대업을 꿈꾸고 있다. 입가에는 미소가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하다.~ 조잡하고 잔털이 너무 많은 글, 거기다가 투박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만족스러웠다. 내가 쓴 글, 내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글. 그것이 나를 빛나게 하고 있었다.

절망이 희망으로, 따분함이 신선함으로 바뀌는 그 날은 나에게 있어 천지창조와 같은.... 환상적인 유토피아와 같았다.

시간은 흘렀다. 몇 십번이나 지속된 그 국어시간의 충격은 나를 변화시켰고 내 존재를 더욱 아름답고 내 삶에 가벼워지고 내 존재는 긍정적이게 무거워지기 시작하니 내 인생의 황금기가 찾아온 것만도 같았다. 그리고 내가 마침내 3학년이 되던 날 3학년 교실 교탁의 서 있는 담임은 국어선생님이었고 나는 내 인생에 황금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노라고 기뻐했다.

3학년이 되고서 어느 날 선생님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우현아, 너 글 많이 늘었다, 백일장 한번 나가보자. 너 저번에 수업시간에 쓴 글 있지? 그거 바꿔서 한번 출품해보자.’

그래, 백일장. 나가볼 때도 되었다. 내 진로가 역사학자에서 작가로 바뀌기 시작할 무렵, 선생님은 내게 말을 걸어오셨던 것이다. 나는 당연한 대답을 했다.

‘예, 한번 해볼게요. 글 한번 바꿔서 출품해보겠습니다.’

그러고는 집에 와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 앞에는 수업시간에 쓴 글, 내가 고쳐야 할 내 자신의 수필이 놓여있었다. 투박하고 섬세하지 못한 글이지만 마음에 든다, 그 글이 나의 것임이 틀림없었기에, 그 글이 의심할 나위 없이 내 손으로 쓰여진 내 이야기였기에 나는 그 글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글을 고쳐나가기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이어져온 혐오만이 가득했던 내 존재의 가치가 이 글에 녹아내려 있었다. 타락하고 죽음에 가까웠던 세계가 점점 눈 앞에 아른거렸지만 그것들은 결국 존재의 개념이 역전되었던 시기의 산물이였던 것이다. 나는 눈물을 머금으며 현실에 바꾸어 나가려 손을 움직였다.

~내가 그곳을 처음 갖게 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을 것이다. 처음 들어섰을 때 그곳은 내게 그저 그런 장소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장소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내게 가장 소중한 장소가 되었다. 그곳은 누구에게나 있고 다른 이의 것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지금 나에게 그곳은 천국이며 유토피아이다. 나의 숨소리만이 고요하게 느껴지는 그곳은 나를 디스토피아와 같은 바깥세상에서 구원해주는 유일한 공간이다.

나는 인생을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인생을 삐뚤어진 관점으로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나는 성격이 날카롭고 부조리함에 대하여 극도의 분노를 느낀다.

또한 공상이 일상이 되다 보니 자연스레 나는 걱정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공상하면 할수록 점점 더 많은 고민이 쌓여갔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걱정과 고민을 쓸데없고 정신 나간 것으로 치부하겠지만, 공상을 통해 얻게 되는 이것은 이미 나의 일부가 되었다.

공상은 주로 고요와 정적의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그 이유는 내가 성격상 소란스러운 환경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소란스러운 세상은 나와 맞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나는 인생에 별로 감흥이 없다. 흥미가 없다. 열정이 없다. 학업 시간은 그저 시간 때우기에 불과하다. 이렇게 흥미를 잃고 무기력하게 사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에게는 그것을 어떻게 할 방도도 힘도 없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는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는 이렇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움만 가득한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 때 가치관이 심하게 뒤틀리고 독서량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나는 인생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게 인생은 힘든 것이라고 낙인찍혔고, 나의 취미는 독서밖에 남아 있지 않은 지금의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내가 힘든 것은 위의 이유뿐만이 아니다. 일상의 반복 역시 나를 힘들게 한다. 반복이 지속될수록 나의 고통은 커져만 가고, 색다를 것 하나 없는 인생이 주는 고통은 나를 더욱 침묵의 장소로 몰아넣는다. 매일 똑같은 짓을 하며 산다는 것이 감정 없는 로봇의 삶을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러나 학원이 끝나고 집에 가면 나는 하루 중 가장 편안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현관문을 열고 거실을 가로질러 내 방문을 연다. 연둣빛을 띠는 작은 장소가 나를 반긴다. 강렬한 방향제가 내 코를 찌르면 고단했던 나의 몸과 마음은 녹아내린다. 조용하다! 내가 느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느낌. 아무리 봐도 평범 혹은 그 이하의 장소이지만, 그곳은 나만의 장소이고, 또한 침묵과 고독의 장소라는 점만으로 모든 것이 용서된다.

나는 책장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오늘 기분에 가장 잘 맞는 책을 선택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일본 작가의 책이다. 책을 가지고 나는 침대로 향한다. 그리고 침대에 몸을 맡기고 책을 음미하기 시작한다. 작가의 선별된 문장과 구절들은 나의 눈을 황홀하게 만든다. 1시간에 걸쳐 읽는다. 수면시간이 되면 나는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한다. 잠은 여러 의미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행위이다. 잠이 들어 꿈을 꿀 때는 나는 현대사회와 학교라는 디스토피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이 된다. 하지만 그 시간은 넉넉하지 않다. 다시 내 눈이 뜨이면, 나는 어제와 같은 삶을 살고 또 내일과 같은 삶을 살 것이다. 매일 그 사실에 절망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다.

나의 유토피아! 나는 나의 방에서 해방되고 성장한다. 그곳에서만이 나는 다른 인류에 속박당하지 않고, 독립된 자아를 가질 수 있다. 이렇듯 삶은 아주 작은 것이 존재하므로 유지되기도 한다.~

쉴 틈 없이 섰고 아름답게 흩뿌렸다. 당연한지도 모르지만 백일장은 떨어졌다. 그렇지만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여서가 아니다. 이것은 내가 살아 숨쉰다는 것을 알게 했던 것이다. 나는 썼고, 고로 존재함을 느낀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3학년의 절반을 지나 점점 끝을 향해 나아가며 나는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3학년도 순식간에 지나갔다. 백일장을 나가고 난 후 정말로 많은 일이 있었다. 학교생활의 즐거움을 깨닫기도 했지만 문학상에 나가 최고상을 받기고 했고 내가 좋아하는 판타지 장르의 글을 쓰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직 내 존재는 공허했다. 무언가 얼이 빠진 듯이 갈구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날은 그것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투쟁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우현아, 글은 그냥 취미로만 쓰자. 엄마는 네가 안정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그냥 벌교로 학교 가서 공부하자.’

그 당시의 나는 글을 쓰기 위해 담임선생님이 추천한 보성고에 진학하려 했었고 그곳에서 나의 꿈을 펼치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그런데 부모님은 그것에 대해 회의적이셨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걱정된 것일 것이다.

‘작가 되서 뭐하려고 돈이나 벌고 살겠어? 엄마는 니가 그런 인생 사는 거 바라지 않는다.’

그 말이 나를 헤집어 놓았다. 지금까지 이룩하고 만들어 놓은 모래성과 같은 불안하지만 아름다운 내 존재의 가치가 순식간에 파멸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래성을 존재를 지키기 위해 투쟁했다.

‘엄마, 나는 솔직히 공부랑은 거리가 먼 것 같아. 뭔가를 아는 건 재밌는데 그걸 억지로 집어넣는 건 도저히 못하겠어. 나는 글을 쓰고 싶어, 그러기위해 보성고에 가는 거야. 엄마가 나를 걱정하는 것도 이해해, 하지만 내 인생을 살게 해줘. 엄마, 드디어 찾은 구원의 길을 막지 말아줘.’

그 말에 엄마는 말이 없었다.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해야지, 우리 아들이 작가되면 멋지고 좋기만 하겠구만.’

뒷자리에서 술에 취해 있던 아빠가 말하기 시작했다. 그로인해, 유지되던 침묵은 깨지었고 아빠는 계속해서 말을 잊기 시작했다.

‘아빠는 니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우현아, 니가 아무리 성공해도 니가 즐기지 않으면 어쩌겠냐. 상도 타고 니 스스로 신념도 생겼으면 이제 작가지. 안그러냐, 박작가.’

아빠는 그렇게 말하고는 골아 떨어졌다. 술김에 한 말인지 아니면 술이 진심을 이끌어 낸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인정받은 것이다. 나를 걱정하고 품으려 하시는 부모님에게서 나는 마침내 정식적으로 독립한 것이다. 내 존재는 이제 하나의 독립적인 개체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로 영웅의 일대기와도 같다. 시련 끝에 성장하고 인정받는 영웅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붙잡으며 마음 속으로 희열을 즐겼고 긴장된 마음이 퍼져 내 몸은 흘러내릴 듯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정말로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갔다. 어느 정도 적응하고 마음의 안식을 취하기 시작할 때는 이미 5월 달의 중순을 지나고 있었다. 전자시계에 걸쳐진 숫자는 5하고 15를 띄웠고 나는 이 날이 스승의 날임을 당일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나는 휴대폰을 켜고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나에게 가장 지대하고도 위대한 영향을 미친 그 분께 나는 연락을 남겼다.

~선생님 스승의 날이라서 연락드립니다.

일단 제가 방황할 때 저의 길을 알려 주셔서 감사하고 또 제가 꿈을 가지게 도와주셔서 감사드려요. 저는 선생님을 존경하고 제 삶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분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 덕분에 글을 쓰는 재미를 알았고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보성고등학교로 오면서 저를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다른 곳으로 진학했다면 제 꿈은 산산이 부셔졌을 테지만 저는 이곳에 오면서 제 꿈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스승의 날이라고 하니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생님이 떠올라 이렇게 올려봅니다. 앞으로도 미래를 향해 전진하겠습니다! 선생님도 건강하시고 언젠가 만날 날을 고대하겠습니다.~

문자를 남기는 동안 나는 가슴을 울리는 기억들을 음미했다. 얼마 되지 않았건만 이렇게도 그리울 줄이야. 나는 그 분에게 아무런 것도 해드리지 못했지만 선생님은 나에게 내가 살아가는 의미와 내 존재의 빛을 알게 해주셨다. 그저 나는 감사하기만 할 뿐이다. 10분 정도 침대에 누워있으니 휴대폰에 진동이 울린다. 답장이 왔고 나는 그것을 읽고 눈물을 쏟았다.

~9시... 하루가 저물어가는 시간에 온 네 문자가 오늘 하루

고단했던 나를 무지하게 위로해 주는구나.

우현아,

그렇지 않아도 보성고 가서 잘 지내는지, 학교는

괜찮은지 늘 궁금했는데 이렇게 소식 들으니 너무 좋구나.

무엇보다 네가 그곳에서 인정받고 존중받고 지내는 것

같아 제일 좋고, 다행이다 싶다. 아마 벌교고 갔으면

정말 괴로운 하루하루를 보냈을 텐데....

우현아, 언제 샘이 니 글의 재미를 발견한 줄 아니? 2학년 때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배우고, 사랑방손님이 어머니를

떠나면서 남긴 편지글을 니가 썼을 때야. 모둠 활동이었지만

너희 모둠은 거의 네가 다 썼지. 절절하게 드러나는

사랑손님의 감정이 잘 표현되어 무척 감동적이었어.

이 말은 네게 처음 말하지?

우현아,

잊지 않고 연락주어 고맙다.

시간되면 얼굴 한번 보자. 독서동아리 애들 같이

한번 만나고 싶구나.~

아아, 찾아 뵙지 못한 것에 대한 죄송함에, 내가 받은 것들에 대한 죄송함에, 또한 그저 끝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하기에 펑펑 눈물을 흘렸다.

행복한 생활이 지속될 때마다 강렬해지는 그 이름이 나를 울먹이게 만든다. 나는 작가를 꿈꾼다. 그렇게 내 존재에 각인되어 있다. 나를 붙잡고 작가를 꿈꾸게 하며 나를 구렁텅이에서 건져주진 그 이름, 나는 오늘도 양혜단선생님을 생각하며 글을 써내려간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