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향기] 만약 내가
[생활의 향기] 만약 내가
  • 광양뉴스
  • 승인 2021.11.19 16:31
  • 호수 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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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경시인·소설가
유미경
시인·소설가

‘가끔씩 나는 생각한다. 만약 내가 다른 길로 갔더라면 삶이 달라졌을까’하고..

만약 내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대학을 갔더라면, 만약 광양에 오지 않았다면, 만약 25살에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만약 글을 쓰지 않았다면…만약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의 삶을 흔들기 시작한다. 만약 내가 다른 길로 갔더라면….

푸르스트는 가지 않는 길에서 말했다.

 

노란 숲속에 길이 / 두 갈래로 나 있었습니다 // 나는 두 길을 / 다 가지 못하는 것을 / 안타깝게 생각하면서…중략…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 택하였다고 // 그리고 그것 때문에 /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그의 말처럼, 나도 다른 길로 갔더라면 지금의 내 삶은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스무 살에 대학을 갔더라면, 내가 원하던 학교 선생님이 되었을 것이고, 남편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지금의 아들과 딸이 아닌 아이들을 낳았을 것이고 광양에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내가 글을 쓰지 않았다면, 지극히 보통 사람이 되어 다른 곳에서 뿌리를 내렸을 것이다.

지금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나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어쩌면 요리사가 되어 텔레비전 요리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럼 그 삶이 행복했을까.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

푸르스트의 말처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달라졌을 지도 모르는 자신의 삶에 대해 동경하고 그리워한다.

하지만 막상 그 길로 갔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길로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마련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다른 길로 갔더라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지금보다 나은 삶일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는 지금의 내 삶에 만족하고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늘 배움에 목말라 있던 나는 30년이 늦은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마쳤다.

그리고 남편과 결혼하여 딸과 아들을 낳고 사춘기 때부터 꿈꾸었던 작가가 되었고, 정규 교사는 아니지만 방과 후 강사로 나름대로의 꿈을 이룬 채 살아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 목숨보다 귀한 딸과 아들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그 어떤 사람도 지금의 내 딸과 아들과는 견줄 수가 없고, 대신해 줄 수도 없다. 세상 물정에 아둔한 나를 일깨워주며 언제나 든든한 내 편이 되어주는 남편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들 앞에 서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나는, 늘 이리저리 채이면서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가족들은 내 삶의 울타리이고 윤활유며 생명을 이어가게 만드는 끈이다. 그러기에 나는 <만약 내가 다른 길로 갔더라면>이라는 생각에 빠져 지금의 소중한 시간들을 결코 허비하고 싶지 않다.

이제 40일 정도가 지나면 또 한 해가 지나간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나는 지금처럼 우리 가족을 사랑하면서 행복한 삶을 이어갈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더도 덜도 말고, 지금처럼 우리 가족이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하는 것이다. 머지않아 겨울이 올 것이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추울 것이라 예고하고 있다. 겨울의 혹한도 몰아낼 수 있는 따뜻한 사랑이, 온 누리에 축복처럼 가득 내리길 소망하면서 나는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