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을 좀 먹는 벌레
쌀을 좀 먹는 벌레
  • 한관호
  • 승인 2009.07.16 09:07
  • 호수 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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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칼럼, 국세청장과 검찰총장 청문회 논란에 대한 글에서 사회 리더가 될 사람들이 가져야할 중요한 덕목으로 도덕성과 노블레스 오불리쥬를 강조했다.
그러던 차에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가 사퇴했다는 소식이다. 비단 이번뿐만 아니라 그동안 청문회를 보면 고위 공직 내정자들은 청문회만 끝나면 그만이라며 능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버티기로 일관했었다. 헌데 이번에는 본인 스스로 물러났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이번 청문회 과정에서도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천박한 문제점들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첫 번째, 지도층이 가진 청렴성에 대한 기준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사회의 기강을 세우고 죄의 유무, 경중을 따져 일벌백계로 다스리는 법 집행 기관의 수장이 가져야 할 덕목의 가치는 청렴함이다.
그런데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선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검사생활 24년 만에 재산이 14억, 15억밖에 되지 않는 것은 보기 드물게 청렴하게 살아왔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바꿔 말해보자. 수입에 비해 지출이 많았는데도 오히려 년 간 수 천 만원 씩 저축을 한 후보를 두고도 이정도면 깨끗한 편이라고 하니 보편적인 검사들은 청렴하지 못한 편이라고 자인한 꼴이 됐다.

더구나 같은 당 주광덕 의원이 천 후보자의 아파트 구입 차용증 조작 의혹과 관련해 ‘후보가 법률전문가, 베테랑 수사 전문가라 의혹이 있는 금융거래라면 오히려 증거 자료를 충분히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데 차용증 등이 허술하게 보인다. 거꾸로 생각하면 의혹이 없다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 네티즌은 천 후보자를 두고 증여세 안내는 법, 이자 안주고 돈 빌리는 법. 위장 전입 방법, 병역기피 법, 수입의 2배를 지출하고도 돈 불리며 잘사는 법 등의 교본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도덕성 논란에 휩싸인 후보자를 법을 다룬 율사출신 국회의원들이 박봉과 막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 검사 또는 공직자들의 명예까지 훼손하면서까지 편들기에 나서는 대목에선 할 말을 잃는다. 정권마다 겪는 인물난, 지도층 스스로 청렴불감증에 걸린 한국사회의 한 단면이다.  
둘째로 잘못된 인사가 낳는 폐해도 심각하다.

임채진 총장이 사퇴한 이후 문성우 대검차장이 검찰을 지휘해왔으나 그도 지난 14일 퇴임해 대검은 총장과 차장 모두가 부재중이다. 또 서울고검장도 이미 퇴임했고 총장으로 내정 되면서 사퇴한 서울지검장 자리도 공백이다. 더구나 후배의 원활한 업무수행을 위한답시고 천 후보자의 사법시험 선배와 동기들이 대거 퇴진해버렸다.
그러니 다시 검찰총장 후보자를 내정하고 청문회를 또 열어야 한다. 사정이 이러니 그동안 검찰조직이 원활하게 작동 하겠는가 우려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인사는 검찰조직의 명예를 떨어뜨리고 국민들의 불신감만 높여 놓았다.

그 원인은 공직 생활의 내력을 철저히 들여다보고 변화하는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 등 지도자가 갖춰야 할 필수적인 덕목이 아니라 권력과의 코드만을 중시한 결과다. 바꾸어 말하면 당파성, 정파성을 배제해아 할 공직을 사유물로 보는 오류로 인해 공직사회가 파행되는 폐단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스폰서 검사'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연간 3,500만원 이상 쇼핑을 해야 자격이 주어지는 백화점 VIP 회원권을 가졌고 6성급 호텔에서 올린 자녀 결혼식 등 결론적으로 수입 보다 지출이 많으면서도 따로 저축까지 하는 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보면서 네티즌이 붙인 신조어다.

이번 청문회에서 드러난 논란은 지인과의 부적절한 돈 거래, 해외 여행이다. 천 후보자의 지인은 15억여원의 돈을 빌려줬고 부부가 함께 해외 여행도 다녀왔다. 면세점에서 똑같은 명품 핸드백도 샀다. 더구나 또 다른 사업가에게서는 고급차 리스도 승계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처럼 자명한 말이 또 있던가. 명절이 되면 하다못해 말단 공무원에게도 선물이 배달되는 세상이니 국민들이 고개를 갸웃 거릴 수 밖에 더 있으랴.  
필자가 글을 쓰고 있는 곁에서 어머니가 쌀벌레 가리기에 한창이다.

며칠 전, 새로 들인 쌀로 밥을 했는데 벌레가 나왔단다. 그 벌레를 색출하던 어머니가 ‘쌀벌레가 쌀을 먹고 눈 똥’이라며 채로 거른 것을 보여줬다.
사회 리더의 역할도 어머니처럼  이어야 하지 않을까. 쌀벌레를 쌀에서 분리해 쌀을 보호하지 않으면 뒤주 속은 온통 쌀을 좀 먹는 벌레와 그 벌레가 배설한 똥만 가득 찰 것이다. 소위 권력 또는 지도층 스스로 자정하지 않는다면 이제 국민들이 뒤주 쏙 쌀벌레를 가려내는 일에 나설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