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동백” 옥룡 동백꽃 기지개를 펴다
“반갑다 동백” 옥룡 동백꽃 기지개를 펴다
  • 최인철
  • 승인 2009.12.10 10:04
  • 호수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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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과 체험이 함께 하는 산책길

(중략)어쩌자고 저 사람들/거친 풀과 나무로/길을 엮으며/산으로 산으로 들까요/어느 바닷가/꽃 이름이 그랬던 가요/꽃 보러 가는 길/산경으로 가는 길/사람들/울며 노래하며/산으로 노를 젓지요/홍어는 썩고 썩어/내륙의 봄도 벌써 갔는데/어쩌자고 저 사람들 /산경 가자 할까요/길에서 주워 /돌탑에 올린 돌 하나/그게 목 부러진 동백이었는데-송찬호 ‘붉은 눈 동백’에서 발췌

낙화가 서러운 꽃이 있다. 모가지 째 뭉텅 떨어져 내리는 꽃이 있다. 그렇게 뭉텅 떨어져 온 길 온 산을 붉게 멍 들이는 꽃이 있다. 선홍색의 완고한 핏빛으로 무너져 내리는 꽃, 동백은 그래서 마음 한 켠에 붉디붉은 점을 화인처럼 남기는 순결함을 지녔는지도 모를 일이다. 시인 송찬호도 그 마음을 알아 동백의 낙화를 산경의 맨 으뜸 위에 올려놓지 않았는지.

백운산 아랫마을 추동마을에도 겨울이 찾아왔다. 마을 입구에는 겨울을 나기 위한 장작더미가 한 가득 쌓이고 아랫목을 지피는 굴뚝연기가 마을을 휘감고 돈다. 집집마다 김장을 담그고 남은 배추 곁으로 씨래기를 묶어 처마 위에 달아 놓는 것에서부터 언 땅에 심은 씨앗 틔우는 일을 돕기 위해 조그만 정성을 얹어 지푸라기를 덮는다.

옥룡 동백 숲을 보러가는 길이다. 아니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 동백을 마중 가는 길에 만난 시골마을 겨울나기 풍경이다. 사람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움츠려 들 때 동백은 이제 제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을 위한 몸부림이 한창이다. 막 서산 쪽으로 몸을 기울기 시작한 겨울 햇살이 꽃봉오리를 간지럽힐 때면 동백은 제 몸에 품은 붉은 기운을 힘껏 밀어 올린다. 시인 송찬호 식으로 인사를 해 보자.
“반갑다 동백”

하지만 옥룡 동백 숲의 동백꽃은 아직 이르다. 이곳의 동백은 봄을 앞둔 3월에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린다. 그런 탓에 사람들은 옥룡 동백 숲의 동백을 아닌 춘백이라고 비아냥을 듣는 이유도 그래서다. 하지만 겨우내 하나의 붉은 꽃망울을 열기 위해 눈에 띄지 않는 곳, 뿌리에서 푸른 잎사귀까지 꽃점을 키우고 망울을 맺고 땅과 하늘의 붉은 기운을 모으고 있는 세월이니 그 비아냥은 이유 없다.

옥룡 동백 숲은 백계산 능선에 자리잡고 있다. 백계산은 주산인 백운산에서 뻗어 내린 지맥으로 형성된 아담한 산으로 백운산의 중앙부에 위치한다. 바로 이 백계산에 7천여그루의 동백나무가 자생하면서 울창한 숲으로 산을 덮고 있다.
옥룡 동백 숲은 고창의 선운사나 여수 오동도에 비해 덜 알려졌으나 역사는 깊다. 신라 때 도선국사가 옥룡사를 창건하고 풍수지리설에 따라 보호수를 심었다는 전설을 품고 있다. 동백숲은 해발 403m의 나지막한 산자락에 펼쳐져 있다. 동백이 펼쳐져 있는 숲만 2천1백 평 정도다. 인공림이 아닌 자연림이고 동백 크기는 5~6m 정도로 큰 편이다. 수백 년 수령을 자랑하는 동백이 옥룡사지터와 운암사 뒤쪽 산을 가득 메우고 있다. 동백이 팔뚝 굵기로 자라는 데만 1백 년이 걸린다는데 이곳의 동백은 20~40cm인 것이 흔하다. 3월 초순에 꽃을 피워 3월말이면 절정을 이룬다.

도선국사의 옥룡사 창건설화를 담은 연못도 동백 숲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니 동백 숲 배꼽의 위치에 연못의 형태가 남아 있다. 전설은 옥룡사를 창건하기 위해서는 백룡과 청룡이 살던 연못을 메워야 했기에 국사가 활을 쏘아 이들을 물리고자 했다.
하지만 청룡은 등천했으나 백룡은 버티다가 국사가 쏜 화살에 한 쪽 눈을 맞고 나서야 물러났다. 국사는 옥룡사를 대찰로 키운 뒤 후학들에게 백씨 성을 가진 승려를 절에 들이지 말라고 일렀으나 어쩌다 백씨 성 가진 중이 하나 와서 절에 불이나 망했다. 활을 맞은 백룡이 꾸민 짓이라는 전설이다. 이 전설도 옥룡 동백 숲에 역사만큼이나 주민들의 입을 타고 지금껏 전해지고 있다.

동백 숲 인근에도 볼거리는 많다. 동백 숲과 옥룡사로 인한 것이니 도선국사의 인정 많은 베품이 여전하다 할 일이다. 옥룡 동백 숲의 절경인 동백터널을 지나면 운암사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작지만 특별한 산사체험도 가능하다. 효성이 깊던 도선국사가 어머님을 모시기 위해 세웠다는 운암사는 최근 중창불사로 중건됐다. 주지인 종견스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고요하다. 특히 동백꽃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스님과 함께 다도를 배우는 일은 선경스럽다.

도선국사 마을로 알려진 양산마을에서는 겨울방학을 맞은 아이들을 위한 농촌 테마체험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도선국사 마을은 아궁이에 불을 떼보며 밤도 굽고 고구마도 구워 먹을 수 있는 따끈한 온돌방, 고소한 손두부, 광양매실향토음식, 천연염색 등 전통의 의식주와 자연생태를 모두 체험해 볼 수 있는 곳이다.
또 광양문화원 사무국장인 나종년 씨가 운영하는 고로쇠 된장 체험장도 체험거리다. 고로쇠된장 만드는 법도 배우고 된장, 고추장, 간장도 맛볼 수 있다.

또 예로부터 항상 맑고 변함없이 맛이 좋아 대대로 원님들의 식수로 전용됐다는 마을 약수터는 사또약수라 불리며, 현재까지도 광양뿐만 아니라 여수, 순천까지 약수를 받으러 오는 분이 많고 여기에서 마을 반짝장터가 때때로 열린다. 지금은 손두부집들이 생겨 막걸리 한 잔의 즐거움도 지나치지 못할 일 가운데 하나다. 막걸리 한 잔에 얼큰하게 취기가 오르면 멀리 동박새가 동백꽃을 재촉한다. 아니 저문 겨울을 재촉하는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봐라 동백꽃이다”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