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경 가는 길…불일폭포에서 청학을 만나다
산경 가는 길…불일폭포에서 청학을 만나다
  • 최인철
  • 승인 2009.12.17 10:54
  • 호수 3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깊은 산 초막을 엮어 삶을 즐기며 살아간다

누가 하늘에서
무지개 하나 몰래 훔쳐와
깊은 산속 벼랑에 이렇듯
숨겨 두었나.
선도성모 상제와 밀회할 때
그네 타려 그랬지.

불일폭포를 노래한 오세영의 시다. 오세영의 눈에도 불일폭포는 벼랑이었나 보다. 또 폭포의 풍성한 물줄기는 선도성모와 상제의 밀회에 견주일 만큼 선계의 그네에 다름 아니었던 듯하다. 그렇듯 불일폭포의 산세는 거칠다. 불일폭포를 마주하면 안과 밖의 세계가 온전히 단절되는 느낌이다. 절벽 저편에 속계의 뜻이 전혀 없는 세계가 펼쳐져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불일폭포 앞에 서면 저 절벽을 훌쩍 뛰어넘고픈 충동에 오금이 저린다.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 선계가 청학과 백학을 품고 앉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청학봉과 백학봉이 그 온전한 세계를 지키는 지국천왕과 광목천왕을 자처한다. 혹여 그 너머에 신선이 된 채 사라진 최치원이 손바닥에 들어앉은 오공을 심판보이고 귀처가 없는 석가여래를 불러와 ‘하늘 땅 따먹기 한판’ 욱일승천하는 기운 맑은 바둑을 두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 그 절벽은 단절이면서도 희망이며 이상향이다.

불일폭포는 그렇게 좌우 양쪽에 깎아지는 절벽 청학과 백학을 두고 맑고 고운 물줄기를 쉼 없이 내려 보낸다. 위에서 떨어지면 아래로 흐르는 게 세상의 이치듯 불일의 것은 부처의 것이니 그에게 주고 네 가져온 것들도 본디 너의 것이 아님으로 버려두고 가라는 묵언의 주장자가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가르침은 그렇게 느닷없이, 시원하게 개벽처럼 오는 일일 게다. 하지만 골 백번 죽어도 그 뜻을 모르니 범인의 명치께가 이리도 저릿저릿한 것이다. 불일폭포는 높이 60m, 너비 3m에 달하는 거대한 폭포로 지리산 10경 가운데 하나다. 지리산국립공원 내의 청학봉과 백학봉 사이 쌍계사 계곡에 위치해 있다. 쌍계사 북쪽 불일평전(佛日平田)에서 약 4㎞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의 물은 쌍계사 계곡을 지나 화개천으로 흘러든다. 폭포의 모습은 마치 용이 승천하는 듯하며, 폭포수 옆으로는 1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절벽이 있다. 이러하여 폭포 아래 용소에 살던 용이 승천하면서 청학봉과 백학봉을 만들고 그사이로 물리 흘러 폭포가 됐다는 전설을 간직한다.

절벽 끝에는 신라 말기 진감국사가 창건한 불일암(佛日庵)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다. 신라의 원효, 의상이 도를 닦고 고려보조국사가 머문 암자다. 폭포와 암자의 이름은 고려시대의 고승인 보조국사 지눌의 시호를 땄다. 고려 제21대 왕인 희종(1204-2111)이 지눌의 덕망과 불심에 감동 불일보조라는 시호를 내렸다. 폭포수 위에는 5색 무지개가 자주 떠오른다. 물줄기는 한여름에도 냉기를 느끼게 할 정도로 차고 맑다.

조선조 지리산 자락에서 은둔의 삶을 살았던 남명 조식은 이곳 불일폭포 주위를 청학동으로 지목했다. 청학은 태평시절과 태평한 땅에서만 나타나 운다는 전설의 새다. 옛 사람들은 그래서 도교적 이상향을 청학동이라 부르며 이 청학동의 세계를 찾았고 불일폭포가 그 가운데 으뜸임을 남명은 말하고 싶었던 게다.

불일폭포 산행에서 폭포 말고 빼 놓을 수 없는 것 또 하나. 국사암에서 산행을 시작해 한 시간여 쉼 없이 오르다 보면 좁혔던 시야가 확 트이면서 나타나는 불일평전이다. 규모야 세석평전의 10분의 1도 되지 않으나 불일평전의 안온함은 세석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바로 이 불일평전에 오르고서야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불일폭포의 물줄기를 들을 수 있다. 불일평전의 주인은 봉명산방이다. 불일평전 유일한 사람살림이다. 하지만 예전 봉명산방을 지키던 주인은 가고 없다. 흰 수염마저 온순해 보이던 털보 할아버지 변규화 씨는 다시 망일의 세계로 돌아갔다.

이 털보 할아버지는 불일평전을 지키며 유유자적했다. 그는 국사암 바로 아랫마을에 집을 두고서도 매일 이곳 산방을 닦고 쓸며 산행에 지친 이들을 반갑게 맞았다. 그는 한 세상 잘 살다 지난 2006년 세상을 떴다. 그가 없으니 산방도 없다. 이제 남은 산방은 그의 것이 아니니 예전 산방과는 인연이 없다. 

<나는/세상을 위해서는/도무지/아무런 재주도 재능도 없고/게으르다/그러면서/또/아는 것이 없다/그러나/다만 내일이 오늘이/된다는 것과/오늘 이 순간까지/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고 있다는/고마움/그것이/큰 행복감으로 남아/깊은 산/한 자락에/초막을 엮어/삶을/즐기며 살아간다>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떠나고 싶어 했던 그가 남긴 시다. 그는 불일에서 놀며 즐기며 살았다. 그리고 흙으로 돌아갔다. 사람 냄새가 진동하던 아름다운 사람은 가고 다시 새 주인이 들어와 산다. 삶은 가고 또 이어진다. 물을 떨어지고 또 흘러가고 비가 내리고 산천에 덮여 또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