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따라 ‘흔들린 듯 생기롭게(Animato )’ 산다
음악 따라 ‘흔들린 듯 생기롭게(Animato )’ 산다
  • 최인철
  • 승인 2009.12.24 09:48
  • 호수 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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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제철초 오케스트라단장 팽기원 교사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다. 또 그리운 것이 있는 사람이면 그리운 곳을 떠나지 못하는 법이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마찬가지다.
철을 따라 자리를 옮기지 아니하고 거의 한 지방에서만 사는 새에게 텃새라는 이름이 붙여진다. 하지만 매년 때가 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새도 있다. 그리움을 안고 있는 대표적인 새는 제비일 게다. 그래서 조상들은 춘삼월 어느 날 처마 밑으로 날아든 제비를 먼 길 떠났던 가족이 돌아온 것처럼 반긴다. 우리는 그렇게 이른 봄날 제비를 기다린다.

한편으론 철새였다가 텃새가 된 새도 있다. 한 곳에 정박해 그곳의 기후와 환경과 싸우며 때론 순응하며 텃새가 되는 새도 있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그러하다. 태어난 곳이 어디일지언정 일생의 흔적을 묻은 곳에서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다. 특히 평생의 모든 정성과 열정을 쏟아 부은 것이라면 말해 무엇하랴.
사람들은 누구나 추억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제 손때가 묻은 것들, 제 사랑과 열정으로 열매 맺는 것들에게 눈길을 거두기 쉽지 않은 법이다. 오히려 문득 생각날 때마다 책장에서 꺼내 펼쳐보는 졸업앨범처럼 그리움은 한껏 부풀어 오르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광양제철초 음악교사 팽기원, 저문 길목에 들어선 퇴임교사의 굴곡 많은 이름이다. 적적한 삶의 여유가 아직 낯선, 저문 생애의 길목에 들어선 퇴임교사의 눈에서 그리움을 읽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화살처럼 빠르게 그야말로 쏜 살같이 지나온 세월이지만 그 모든 이력은 그의 눈에 긴 그림자를 남겼다. 평생을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았다. 자신의 모든 삶이 그곳에 있고 그 삶의 안방에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여전하다.

그런 팽 교사의 음악과 제자의 대한 애정이 깊어갈수록 아이들의 실력도 죽순처럼 커갔다. 제철초 아이들의 실력이 콩나물처럼 자랄수록 그의 수상경력도 차츰 쌓였다. 전국학생음악경연대회 지도교사상, 전국관악경연대회 지도교사상, 한국교육자대상 스승상, 올해의 포스코교육상 대상 등 수 십 번 화려한 경력이 늘어났다. 하지만 상은 중요하지 않다. 그건 애정과 열정 뒤에 따라 오는 관객들의 박수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 정년퇴임한 뒤 4년 만에 다시 본 그의 얼굴은 한결 편안하다. 퇴임 전 만난 그는 예술가 특유의 고집스러움과 강단이 묻어나는 얼굴이었으나 이제는 보다 너그러워지고 여유롭다. 학교라는 담장을 넘어선지 이제 4년째, 그 세월이 따스함을 그에게 선물한 듯 보인다.
그는 여전히 교직생활의 마지막을 보낸 제철초 교정에서 간간히 모습이 잡힌다. 돌아온 철새처럼, 집 떠나기 싫은 텃새처럼 여전히 지지배배 아이들이 뛰어노는 교정을 보면 흐뭇하기 그지없다.

팽기원 선생은 퇴임 뒤에도 아직 오케스트라단의 지휘봉을 놓지 않고 있다. 아니 놓지 못하고 있다. 악보 앞에선 아이들을 가르칠 후배교사가 아직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냥 손을 놓기에는 걱정이 앞선 때문이기도 하다. 제철초 오케스트라의 숨결을 이어가기 위해 조바심 내지 않고 그는 여전히 기다린다. 언젠가 좋은 후배교사가 나타나 자신의 자리를 대신 메워줄 때가 오지 않겠는가.

그의 인생은 음악과 아이들이 8할이다. 지난 1964년 교직에 첫발을 내딛는 이후 음악의 아름다운을 아이들과 나누는 일을 단 한 번도 주저하지 않았다. 특히 1971년 홍익대학교 사범대학부속초등학교 관현악단을 창단해 지휘자의 길로 들어선 뒤 1991년 광양제철초등학교 관악합주단을 창단해 제철초 관현악단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게 17년 세월이다.

그 세월동안 그를 거쳐 갔던 아이들은 이제 중년을 훌쩍 넘겼다. 그 세월동안 그의 인생은 베토벤의 유명한 교향곡 ‘운명’처럼 빠르다가 느려졌고 광활하다가 외로웠다. 영화음악 Gloomy Sunday(1999)글루미 선데이처럼 처절했다가 다시 일어서는 날들도 있었다. 그런 그에게 음악은 삶을 이끌어 가는 힘이자 친구.
음악(音樂)은 소리로서 혹은 소리를 들음으로써 사람이 느끼는 즐거움을 뜻한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거추장한 거대담론의 뜻은 애초에 지니지 않았다. 생활 속에 살아 숨 쉬는 음악, 그것이 그가 아는 음악의 진면목이다. 핸드폰 벨소리에서부터 아이들의 발장난까지, 충남 천안의 작은 시골학교에서 선생님을 따라 노래와 오르간으로 음악을 처음 맛본 뒤 그는 줄곧 음악과 함께 동거동락 했다.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오르간을 배우던 시절 닭 사료로 쓰이는 개구리를 한 깡통씩 잡아다 레슨비를 대신했던 그때부터 머리에 서리가 내려앉기 시작한 지금까지 음악은 한결같이 그의 곁을 굳건한 바위산처럼 지켰다. 그가 떠나지 않으니 음악도 그를 떠나지 않은 탓이다. 

 이제 예순 을 넘긴 나이에 음악과 교육의 중간지점에서 다시금 지휘봉을 잡은 팽기원, 새 삶을 준비하는 일도 제 안에 품어진 희망의 모습을 보고 희망을 꺼내드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게 순리라는 것을 다만 알뿐, 그는 다시 격하게 요동치는 음악의 바다에 아이들을 불러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