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사랑하듯 고향을 사랑합니다”
“복싱 사랑하듯 고향을 사랑합니다”
  • 이성훈
  • 승인 2010.03.18 09:33
  • 호수 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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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동 출신 전 동양태평양 타이틀 챔피언 황충재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복싱 금메달-1979년 프로 데뷔-1980년 필리핀의 단디 구즈만을 판정으로 이기며 OPBF 웰터급 챔프에 등극-1981년 태국 원정 경기서 사엔삭 무앙수린 3-0 판정승…’ 태인동 도촌 마을 출신인 황충재(52) 전 동양챔피언의 주요 약력이다.

현재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일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황 선수가 토요일인 지난 13일 고향을 찾았다. 황 선수는 초등학교 4학년때 순천 남초교로 전학 가기 전까지 줄곧 고향인 태인동에서 살았다. 황 선수는 태인동 도촌마을 황병길 씨 집 4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현재 태인동에 형님인 황충환 씨와 가족들이 살고 있다.  

80년대 링 위를 펄펄 날던 황 선수도 이제는 세월이 흘러 50줄에 들어섰다. 흰머리는 간간히 보였지만 눈매와 다부진 체격, 유수의 챔피언들을 링위에 때려눕힌 단단한 주먹은 그대로다. 황 선수는 얼마 전 MBC 무한도전에도 출연해 복싱에 대한 애정과 매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본격적으로 복싱을 배운 후 객지에서 생활했지만 항상 고향의 따뜻함을 잊을 순 없었죠. 가족들도 태인동에 살고 있어서 언제나 광양은 내 삶의 뿌리였습니다.” 황 선수는 오랜만에 찾은 고향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복싱.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가장 정직한 스포츠라고 말한다. 링위에서 단 두 명만이 승패를 놓고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인다. 코뼈가 부러지고 눈 언저리도 찢어지는 것은 다반사. 후반전에 들어서면 주먹 들 힘도 없을 정도로 체력은 완전히 바닥나고 오기만 남는다.
하지만 경기가 끝나면 승자도, 패자도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서로 얼싸안으며 다독거려주는 것이 복싱의 매력이다.

선수 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 무엇일까. 강도 높은 훈련도, 시합 중 상대방에게 두들겨 맞은 것도 아니다. 바로 체중 감량이다. 황 선수는 “권투 선수에게 체중감량 만큼 고통스러운 순간은 없다”고 단언했다. 어떤 때는 침만으로도 100g을 뺄 정도로 체중감량은 가장 고통스럽고 혹독한 시간이라는 것.

그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체중을 확 줄이고 나면 온몸에 힘이 빠져 시합을 나갈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힘들었던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그러나 “혹독한 훈련을 잘 견뎌왔기에 챔피언을 획득하고 정상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며 “이는 저 뿐만 아닌 선수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무앙수린 판정승 ‘명승부’

황충재 선수에게 있어 가장 인상 깊었던 시합을 꼽으면 1979년 방콕 아시안게임때 금메달을 획득한 경기와 1981년 태국 원정 경기서 사엔삭 무앙수린을 3-0 판정승으로 이긴 경기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일약 영웅이 됐으며 당시 고향에서 한 바탕 잔치가 열린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81년도 무앙수린과의 시합은 홈텃세로 유명한 태국까지 원정을 가서 무앙수린을 3-0 판정승으로 깨끗이 이기며 동양에선 그의 상대가 될 선수가 없을 정도였다. 황충재 선수는 OPBF 웰터급 13차 방어까지 성공하며 승승장구했으나 14차 방어전에서 황준석에게 8회 KO패를 당하며 이후 은퇴의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그는 “선수시절 관중들의 전폭적인 응원과 복싱 인기에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며 “승리도 패배도 결국 경기의 한 부분 아니겠느냐”며 웃었다.

황 선수는 요즘 대형 복싱 스타가 없는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알리-레너드-타이슨 등 전 세계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걸출한 복싱 스타가 타이슨 이후 맥이 끊겼다는 것. 최근 파퀴야오와 메이웨더가 다시 한 번 복싱 팬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으나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80년대와 90년대 초반 텔레비전에서 복싱 경기가 열리면 동네가 조용할 정도로 인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하지만 그 열기는 서서히 식어갔고 요즘은 선수들이 시합을 하고 싶어도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례가 허다하다. 황 선수는 “갈수록 복싱의 인기가 떨어져 안타깝다”면서 “그러나 요즘은 복싱이 생활스포츠의 하나로 자리 잡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복싱이 다이어트와 체력단련에 적합한 운동이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젊은층, 장년층 할 것 없이 여성들도 복싱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몸매관리나 체력유지에 복싱만큼 좋은 운동은 없다”며 “앞으로도 복싱을 더욱더 사랑하고 관심 있게 지켜보는 분위기가 이어져 갔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그는 복싱에 대한 편견도 이제는 사라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과거 못살던 시절 복싱은 ‘찢어지게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하는 운동’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황 선수는 “아직도 ‘복싱’하면 이런 인식이 강한데 요즘은 경제력 있고 배운 사람들도 운동을 한다”며 “이제는 사람들이 그런 편견을 버렸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황 선수는 이어 “복싱은 인성 교육에도 좋은 운동이라며 재소자들도 복싱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후진 양성 소망
소중한 일 하고 싶어

현재 SBS에서 복싱 해설을 맡고 있는 황 선수의 소망은 후진 양성이다. 황 선수는 하루에 한 시간 이상씩 운동을 하며 후배들 지도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스스로 터득한 훈련법이 있다”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훌륭한 후배들을 배출해보고 싶은 것이 꿈이다”고 말했다. 

황 선수는 고향에 대한 감사의 인사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챔피언이 되기까지 고향에서 보내준 성원과 사랑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다”면서 “훌륭한 선수로 성장 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신 고향 선후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황 선수는 이어 “고향에 자주 내려오지 못하지만 가족, 친구들과 연락하며 고향 소식을 자주 듣는다”면서 “서울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고 말했다.

황 선수는 “향우들이 더욱더 복싱을 사랑해주고 응원해주길 부탁드린다”면서 “늘 고향을 잊지 않고 그동안 받은 사랑을 보답할 수 있도록 우리나라 복싱 발전에 앞으로 조그마한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