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년 짧은 역사, 주민들에겐 희망과 풍요의 땅
50여년 짧은 역사, 주민들에겐 희망과 풍요의 땅
  • 박주식
  • 승인 2010.05.24 09:35
  • 호수 3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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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의 선물 ‘명당마을’

 


  550리를 흘러온 섬진강 물길이 마지막 힘을 다해 바다와 만나는 곳.
예전처럼 많은 양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머나먼 여정을 쉼 없이 달려 마지막 종착지에 다다르며 가슴에 보듬어온 작은 은빛 알갱이를 풀어낸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강물을 반겨 맞아 바다 품에 안기는 곳이 있으니 그곳이 배알도. 배알도는 섬진강물을 보듬어 다시 두 갈래 길을 열어 섬진강 물을 태인동을 감싸고 남해바다로 흘려보낸다. 그러면서 강물이 싣고 온 모래를 모으고 모으니 모래가 등이 되고 또 육지가 된다.

태인동 명당마을. 명당마을은 오랜 시간의 역사 속에 섬진강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배알도를 전면에 두고 쌓이고 쌓인 모래는 등(명당등)을 이뤘고 그곳에 바다잔디가 자라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어느 날 그곳에 사람들이 찾아들었다.

문헌에 의하면 명당마을은 1959년부터 배알도 에서 궁기마을 사이 섬진강변을 잇는 제방을 막아 본래 모래섬이었던 곳을 들로 바꿨다고 한다. 그리고 1964년 궁기마을과 각지에서 이주가 시작 됐고 비로소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제방을 쌓기 전에는 작은 섬 땅에 지나지 않았던 명당등이 웃방천(1호제방)과 아랫방천(2호제방)을 막자 넓은 농토로 바뀌었고, 1964년 이후 1백 정보에 달하는 ‘신간지들’이 생기면서 마을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에도 명당마을의 간척은 70년대 후반까지 계속됐다. 하지만 대규모 간척사업보단 개인이 자신의 땅을 마련하기 위한 소규모 간척이 주로 이뤄졌다.
이들은 인근지역에서 이주한 이들도 있었으나 대부분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코자 찾아와 땅을 개간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래서 명당마을은 궁기마을에서 온 김씨 외에도 각지에서 들어온 박씨, 송씨, 빈씨, 염씨, 고씨, 등 다양한 성씨가 마을을 이루고 있다.

황금대들보가 묻혀있는 ‘명당’   
새로운 부흥이끌 산단으로 거듭나
황금대들보가 묻혀있는 ‘명당’   

명당이란 마을이름은 전우치 전설에서 유래한다. 전우치가 명나라에서 가져온 황금대들보를 궁기마을 앞바다에 감추어 두었는데 이곳이 현재의 명당들인 것이다. 금이 묻혀있는 길지라 하여 명당(明堂)등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또 다른 이름으론 바다잔디가 많아 ‘짠디밭등’, 또는 대밭이 있다 하여 ‘대밭등’이라고도 불렸다.

뱀섬이라고도 불렸던 배알도는 망덕산 정상에 있다는 천자에게 배알하는 형국이라 하여 배알도(拜謁島)라 이름 한 것으로 전한다. 이 섬 위에는 ‘해운정’이란 정자가 있었으나 1960년대 사라호 태풍으로 붕괴되어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다.

광양제철소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배알도 주변 모래사장은 망덕 해수욕장이란 이름으로 피서객들에겐 명성이 자자했다.
그러나 광양제철소 입지와 함께 준설과 물길이 바뀌며 모래가 유실돼 지금은 해수욕장의 기능은 상실된 채 공원이 조성돼 있다.
광양에서 해수면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이곳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 마을은 과거 김양식이 잘되어 일제 때 하동사람들이 이곳을 차지해 큰 싸움이 난적도 있었으나 태인도 사람들에게 당하지 못했다고 전한다.
명당마을은 섬진강변에서 밀려온 토양이 쌓여 이뤄진 곳으로 토질이 비옥해 농사가 잘된다.

또 주변경관이 수려해 관광지로서의 조건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이 마을은 한때 60여 호가 넘는 가구에 200여명의 주민이 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젊은이들은 대부분 중마동 등지로 나가고 40여 가구에 100여명의 주민들만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세상엔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말 뿐이라고 했던가.
언제까지나 섬진강의 혜택 속에 순박한 삶을 지속할 것만 같았던 명당마을이 새롭게 변모하고 있다.
광양제철산업단지가 들어서며 녹지공간의 역할을 해왔던 이 마을이 공업지역으로의 용도 변경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보다 앞서 용지마을 앞 30만㎡가 2005년 11월 명당국민임대산업단지로 조성됐으며, 명당 1차 지구는 포스틸이 부지조성 중이다.
그리고 1982년부터 산단지역으로 지정돼 있던 2차 지구(명당임대산단~명당 아랫마을까지)엔 후판가공업체들의 입주가 결정돼 다음 달 중 용지보상을 앞두고 있다.

대부분의 마을이 속해있는 3지구는 용도변경이 추진 중이다. 명당마을은 2차지구 산단 조성에 따라 10여 가구의 이주가 추진되고, 이어 3차 지구에 산단이 들어서게 되면 마을 전체가 이주를 해야만 할 상황이다.
50여년의 짧은 마을 역사가 종지부를 찍고 또 다른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동안 명당마을은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희망과 풍요를 안겨줬다. 그리고 이젠 광양의 새로운 부흥을 이끌 명당으로 거듭나려하고 있다. 

명당마을 주민들의 모임인 명심회 회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