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얼굴도 모르는데 무슨 평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데 무슨 평가?”
  • 지정운
  • 승인 2010.06.28 09:22
  • 호수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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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들 “교원평가제 겉돈다” 비판의 목소리


올해부터 전국 모든 초ㆍ중ㆍ고교 교원에 대한 교원평가제가 전면 시행되고 있지만 학부모들은 교원평가제 시행에 대해 잘 모르거나 평가내용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이 제도가 본래의 취지대로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학부모의 교원평가 부분은 학부모와 교원들 양측에게 불만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지역의 모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을 자녀로 둔 서 모씨는 “그동안 성역으로 남았던 학교에 대해 평가를 하겠다는 것은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동의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반강제식으로 밀어붙이는 학부모의 교원평가 방식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얼마전 자녀가 가져온 교원평가 설문지를 보고 답답함을 느꼈다”며 “매일 수업을 참관하는 것도 아닌 마당에 달랑 설문지만 보고 잘한다 혹은 못한다를 평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말했다. 또 “평가지를 그냥 보내기도 뭐해 적당한 선에서 잘하는 편에다 모두 동그라미를 쳤다”며 “교사나 학교 수업에 대해 잘 알고 있더라도 자식을 학교에 보내는 입장에서 냉정한 평가를 내리기는 어려워 평가의 취지를 살리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서 씨의 지적처럼 교원평가와 관련 학부모의 평가가 겉돈다는 것은 설문지를 대하는 순간 알 수 있다. 초등학교의 경우 학교와 교원 평가가 자녀의 담임선생님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까닭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학부모라면 생소함이 다소 덜할 수 있지만 중ㆍ고등학교를 놓고 이야기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우선 평가 대상이 10명 이상이다. 학부모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교사에 대해 평가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중학교 1학년 학생을 두고 있는 김 모 씨는 “이제 입학한지 3~4개월 밖에 안됐는데 선생님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며 “게다가 얼굴을 본적도, 목소리를 들은 적도 없는 교장, 교감, 보건교사, 독서실 사서교사를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탁상행정 아니냐”고 불편한 심기를 보였다.

실제로 설문지의 만족도 조사문항에는 ‘교사의 효과적인 언어 사용으로 학생들의 이해를 도와준다고 생각하는가’라는 ‘교사의 발문’을 물어보는 문항이 들어있다. 얼굴도 모르는데 목소리를 어떻게 평가하는냐는 학부모들의 지적에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교육당국은 평가를 하는 학부모의 익명성이 보장된다고 강조하지만 학부모들은 이에 대해서도 반신반의하고 있다.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박 모 씨는 “우선 온라인평가에 들어가기 위해 로그인 할 때 학년, 반, 번호까지 다 체크 하고 학교에서 나눠준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했다”며 “평가한 내용을 학교에서 볼까봐 조심스럽고,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잘못 했다간 자녀가 피해를 볼까봐 전전긍긍하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고 말했다.

이같은 설문조사에 대해 일선학교 교사들의 반응도 불만스럽긴 마찬가지다. 중학교 교사 B씨는 “아직 법제화가 이뤄지지도 않았는데 교육 관련 모든 구성원들의 합의도 없이 정부가 강제적으로 교원 평가를 밀어붙이고 있다”며 “교사를 평가의 대상으로 내몰아 순위를 매겨 자존심을 짓밟는 정책은 교육자들을 더욱 힘빠지게 하는 정책”이라고 소리를 높였다.

B 교사는 또 “최근 시ㆍ도교육감이 새롭게 선출된 만큼 취임 후엔 평가 방식에 대한 고민과 아울러 정책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혀 정부의 평가방식에 교원들이 불만이 있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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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