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진평 품에 안은 기름진 옥토 ‘의암’
옥진평 품에 안은 기름진 옥토 ‘의암’
  • 박주식
  • 승인 2010.07.05 09:22
  • 호수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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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8경 ‘의암만조’ 의암마을

광양을 대표하는 포구, 경치, 그리고 마을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8경(景)·8포(浦)·12실(室)이다. 예로부터 광양에서 전해 내려오는 8경ㆍ8포는 광양에 터를 박고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또 다른 자긍심일 것이다. 또한 오랜 선조 때부터 광양의 아름다운 곳과 포구를 토착민들에게 전해 준 것은 아마도 가까이 있어 잊고 지내는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더 소중히 여기라는 외침일 것이다. 광양의 8경은 운산청풍ㆍ억불단풍ㆍ섬강추월ㆍ선포귀범ㆍ마로낙조ㆍ서산모우ㆍ초포어화ㆍ의암만조. 세월의 흐름으로 더 나은 발전을 추구하는 세태에 밀려 그 모습들이 변화를 거듭했지만 아직은 대부분 예전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의암만조만(의암에 차오른 바닷물)은 예외다. 옥곡면 신금리 의암을 찾아 과거의 풍광을 짐작키란 쉽지가 않다. 넒은 옥진평이 마을 앞을 떡하니 자리 잡고 있으니 이곳에 바닷물이 차오른 아름다운 풍경을 상상하기란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옥곡천과 수어천 하류지역에 위치하여 조수가 드나드는 갯벌지역으로 갈대가 넓게 자생하는 잡종지였던 이 지역에 간척이 이뤄져 옥곡면에서 가장 넓은 곡창 지대로 변모한건 1957년. 바다를 메워 농경지로 조성하는 것은 당시주민들의 오랜 숙원사업 이었다. 주민들은 잡종지 소유자들의 사업동의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옥진수리조합을 설립하고 간척공사를 시작해  1962년에 방조제축조와 방조제내부공사를 완공했다. 이에 따라 108정보의 농지를 조성해 당시 잡종지 소유자들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식량증산에 크게 기여한 곡창지대가 조성된 것. 지금은 옥곡과 광영동을 잇는 4차선도로가 관통하고 있어 옥진평이 두 개 지역으로 나뉘어져 옛 모습이 크게 변모되었지만 당시의 옥진평은 그자체가 또 하나의 장관이었다. 옥곡면 신금리 의암(衣岩)마을은 행정리상 의암이라 하며 자연마을로 상의(上衣)ㆍ하의(下衣)ㆍ월앙동ㆍ정자 등의 자연마을로 이뤄져 있다.

1687년경 마을이 형성된 의암마을은 장동리 동남쪽에 위치하며, 마을 앞의 바위가 마치 여인네가 치마를 입고 있는 것 같이 보이므로 여기에 연유하여 마을 이름을 의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위쪽에 있는 마을을 웃옷바구, 상의(안똠)라 하였고 아래쪽에 있는 마을은 하의(바깥똠)라 불렀다. 월앙동은 광영으로 도로 확ㆍ포장된 지역이 반월형이고 이 지역이 토끼가 달을 쳐다보는 형국 즉 옥토망월형국 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정자마을은 새로 형성된 마을로 이곳에 정자나무가 있어 불리어진 마을 이름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의암엔 옷바구가 세 곳에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월앙동(배나무 선창)에 있는 정자나무 거리에 있는 돌로 어사 박문수가 ‘의암’이라고 직접 썼다는 글씨 흔적이 남아 있다.  또 하나는 안똠(모퉁이 밖)도로변에 쌍둥이 바위가 있었으나 현재는 사라졌으며 나머지 하나는 하의마을 도로변에 위치한 일명 비럭바구라고도 부르는데 여자가 비단옷을 입고 있는 형국이었다고 하나 도로 확ㆍ포장으로 훼손되어 현재는 돌부리 일부만 남아있다.

마을개발 주민에게  희망돼야

의암을 두고 마을 뒷산 전체가 돌산 인데 그곳에 흙이 덮여 ‘암이 옷을 입었다’하여 의암이라 칭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어쨌거나 바위와 인연을 가진 마을임엔 틀림없는 마을이다. 옥진평에 농사짓고 옥곡천과 수어천의 민물과 광양만의 바닷물이 만나는 갯가에서 어업을 함으로서 풍족한 삶을 이어 가던 의암마을에 큰 변화기 일고 있다. 어쩌면 마을의 흔적조차 보전하지 못하고 이주를 해야 할 판이다. 변화의 시작은 신금공단 조성. 마을 앞 옥진평에 공단을 조성하는 것이다. 바다가 논이 되고, 다시 공장이 들어선다. 하지만 주민들에겐 단순한 지형 변화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생존의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의암산자락 아래에 위치한 의암마을은 마을 앞에 공단이 조성되면서 고립될 수밖에 없는 위치다.

거기다 마을보다 높게 공단이 조성되니 앞뒤로 꽉 막혀 숨통을 조이는 형국이다.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에 주민들은 주거환경 개선사업을 요구했고, 또 이주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가 추진에 나선 것이 광영ㆍ의암지구 도시개발사업. 하지만 이에 대해 의암주민들은 불만이 많다. 시가 예산을 마련치 못해 환지적용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주민을 우선시하기 보단 사업성만을 따지고 있는 것도 서운하다. 김용욱 의암발전협의회장은 “의암 뒷산 개발은 처음부터 생각도 안았던 일이다. 생활터전을 잃고 환경이 바뀐 주민들이 보상이나 혜택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시의 계획대로 사업이 진행되면 환지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주민들에겐 득보다 실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반발했다. 그는 ”그동안 시에서 주민들의 협조를 당부하기에 무던히 인내해 왔다”며 “이제는 주민을 먼저 생각하는 시정이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암마을 주민들은 환지가 아닌 월앙동에 이주단지를 조성하는 방안을 또 하나의 대안으로 마련하고 있다. 한 동네 사람들이 헤어지지 않고 계속 함께 살아가고픈 인정에서다. 산전벽해를 겪고 있는 의암마을. 더 이상 주민들의 아픔 없이 새로운 희망이 도래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