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고조(八高祖)’를 아십니까?
‘팔고조(八高祖)’를 아십니까?
  • 광양뉴스
  • 승인 2011.10.10 09:59
  • 호수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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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신 광양향교 장의


안영신 광양향교 장의
나는 지난주 토요일(10.1) 광주에 계시는 집안 형님이 갑자기 오셔서 저의 선친 묘소에 들려 성묘를 하고 저의 본가로 들려서 족보(무진보.1868,병자보.1936년)를 보는 과정에서 족보의 서․발문 고갑자와세시명{(1936柔兆.困敦,元月,旣望.유조.곤돈,원월,기망)(丙子,正月,十六,병자,정월,십육)}을 서로 간에 이야기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나는  살며시 팔고조를 아시느냐고 여쭈었더니 모른다고 하셨다. 

그래서 순간 팔고조란 생소한 단어라는 것을 느꼈다. 국학문이 밝음에도 불구하시고 팔고조를 모른다하니 다른 사람들은 어떠하겠는가 싶어 아는 대로 몇 자 적어본다.

나는 선친께서 살아생전 혹 어쩌다보면 팔고조의 이야기를 하셨다. 그러나 아버지에게서 들어서 아는 바이지만 한번 듣고 두 번 들어 팔고조 호칭을 안답시고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고 흘려버렸다.  그러다보니 나 역시 성씨 및 거주지도 모르는 것 같다. 하지만 조금은 모르는 사람과의 차이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 아무리 바쁜 세상살이라 할지라도 50~60세쯤 이르면 남녀빈부를 막론하고 경향 각지를 떠나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해주신 팔고조라는 명칭을 살펴보면 친가親家로는“조부지조부요 조부지외조부라, 조모지조부요 조모지외조부라”, 외가外家로는“외조부지조부요, 외조부지외조부라, 외조모지조부요 외조모지외조부”라는 어른들이 있었다는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팔고조라는 말이 저-멀리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등불 같지만,

지난 1960년대까지만 해도 보학은 뼈대있는 양반집안 후손이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교양이었다. 처음 만나서 수인사를 나눈 다음 관향(貫鄕)은 어떻게 되는가? 입향조(入鄕祖)는 누구이며 갈장(鍻狀)은 누가 썼느냐? [갈장(鍻狀)은 묘갈명(墓碣銘)과 행장(行狀)을줄여 부르는 표현이다.] 불천위(不遷位:4대가지나도위패을옮기지않고계속모시는제사)는 어떻게 되는가. 등을 상대방에게 넌지시 물어보는 것이다. 

이러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면 대접이 격하되고 막힘이 없이 썩 잘하면 확실한 양반 후손으로 대접을 받는다. 그만큼  보학(譜學)은 문벌과 교양의 척도였다. 보학문답에서 최고의 경지는 팔고조를 아는 일이다. 나를 중심으로 한 친가와 외가까지의 고조 모두를 알고 있어야한다. 팔고조도는 조상을 고조대까지 밝힌 가계도로 그 가계도상에 나타나는 위에서 말한 여덟 분이 팔고조라 칭한다.
 
 그러므로 인하여  삶의 모습에 따라 다소차이는 있겠지만  선영과 조상에 대한 관심이 누구든 가지는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이 자체가 바로 족보의 밑바탕이 아닐까싶다. 족보의 표지색깔이 왜 황토색이며  그 묶은 끈은 붉은색일까? 황토는 인간이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뜻이요. 붉은 색깔은 바로 핏줄을 말함이다.

족보란 가계를 통하여 자신이 어떻게 존재해왔는지를 말해주는 확인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이 바로 만물이 뿌리의 유전으로 종족번식을 꾀하듯 족보의 범주내인 팔고조의 틀에서 생겨나온 것을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고달프고 바쁜 현실이다 할지라도 잠시 팔고조도라는 것을 한번쯤은 상고해 보는 것 또한 다행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