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규 자유기고가] 마을의 매력, 사람의 향기
[박두규 자유기고가] 마을의 매력, 사람의 향기
  • 광양뉴스
  • 승인 2012.09.17 09:58
  • 호수 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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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너머 마을 앞이 꿈꾸는 들판이다(진월면 차동 사동 진목 중산 선포 마동 용소 구덕 마을)

차동 뒷산에서 진상면 목과 마을로 넘어가는 상재. 이 고갯길 위를 상도면(上道面) 아래는 하도면(下道面)이라 했다.

여기부터 호남정맥 줄기는 마무리를 앞두고 꼬리를 사리듯 서서히 흐른다.

배암재와 진등이 큰 산맥에 속한 줄 몰라도 차동~방죽~내망으로 펼쳐진 하도평야를 보며 희망찬 사람들. 방죽머리의 진월초등학교는 아름다운 꿈의 터전이었는데 폐교되어 직업훈련센터로 쓰인다.

아직도 후미진 중산에서 차동까지 도로는 확장을 추진 중이고.

들판을 둘러싼 여러 마을
차동은 수리치 아래 있는 포구여서 수리개, 수레개라 하던 마을이다. 마을 입구 ‘배들이’는 옛날 배가 들어왔던 곳이고, 안 씨 집안의 한옥이 볼만하다.

사동은 배암재 아래 위치하며 도로 공사 중 뱀굴이 발견되기도 했는데 조선시대는 학동이라 했다.


진목 안 씨 고택. 사랑채 당호는 운강장이다.

진목은 청룡등에 참나무가 많아 참나무징이라 부르다 정자가 세워져 진목정이었다. 조선후기 문과에 급제한 안창범 집안의 한옥이 있다.

항동은 목처럼 잘록한 고개 밑이어서 ‘목몰’이며 박 씨 마을이다. 중산은 배암재의 산등성이가 장재까지 가는 중간의 진등재 아래 마을이며 남해고속도로 확장 공사 중 조개무지에서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유물이 나왔다. 선포는 섬포(蟾浦)였고 신선이 사는 선동으로도 불렀으며, 선창이 있어 선개라 했다.

마동은 말머리 모양으로 볼록 나온 산등성이 아래 포구가 있는 ‘몰개’다. 마포(馬浦)라 하다가 개(浦)가 없어지자 마동으로 바꿨다. 방죽은 ‘방죽머리’에서 10여 개 방천의 수문을 조절하던 곳이며 마을 뒷산이 연꽃 모양이고 대밭이 있다는 뜻의 한자를 썼다.

용소는 마을 앞의 큰 소(沼)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고, 문화 마을 터전은 입주자를 기다린다. 구덕은 덕재인데 신덕에 대응하여 구덕이 됐고, 화양골은 임진왜란 때 화약을 보관한 골짜기다.

 

고향과 농촌에서 땀 흘리는 재미
차동 안한성(76) 씨는 큰 아들 요청으로 돼지를 키우기 시작하여 축산을 일으켰다. 동부선 연결도로, 진광교회, 진월남중 설립에 힘썼고, 노경회(노인을 공경하는 사람들의 모임) 노인복지센터를 용소에 운영하며 04년 대통령상을 받았다.

안영준(71) 씨는 한옥을 국가지정문화재로 등록해 보려했으나 어려웠고 매천 황현 관련 옛 자료까지 도둑맞은 것이 안타깝다.

진목 안인호(68) 씨는 무농약 벼를 재배하는 ‘진정-이정 친환경단지’를 이끌며 친환경농업부문 농수산장관상을 받았고 농촌지도자회 광양시연합회장을 마치면서 국무총리상도 받았다.

안정주(60) 씨는 120년 된 한옥 건물만 팔거나 보존하면서 활용하는 방안 등을 고심한다.

항동 박주윤(82) 씨는 통배기 주막집이 3개 면의 손님을 끌었던 맛과 진광교회가 6.25 전 진목교회로 시작할 때의 이야기로 가슴이 뭉클하다.

중산 박순규(76) 씨는 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내무부장관상을 받았고 마을과 농협 일의 책임자로서 활동했다.

마동 안영춘(66) 씨는 교직에서 은퇴하고 노모와 텃밭을 가꾸며 서예가로서 후배들을 북돋아줄 작품을 구상한다.

구덕 조재욱(57) 씨 부부는 부모님 모시느라 고향을 지켰는데 마을 회관에서 한 가족으로 어울리는 살림살이가 재밌다. 마을의 14가구 중 6가구가 혼자 사는데 작년부터 버스가 하루 두 번 다녀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