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와 봉사는 자식들을 위한 공덕”
“기부와 봉사는 자식들을 위한 공덕”
  • 이혜선
  • 승인 2012.10.08 09:39
  • 호수 4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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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는 삶을 선택한 퇴직공무원 정현무 어르신
정현무 어르신(80)은 최근 (재)사랑나눔복지재단이 진행하고 있는 희망100인 기부릴레이에 성금 1천만 원을 기탁하면서 개인 기부자로서는 가장 큰 금액으로 참여해 주목을 받고 있다.

1993년에 퇴직한 이후 지금껏 받은 퇴직연금을 쓰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 성황초에 장학금 500만원을 전달했고 24년 째 명절마다 관내 6개 경로당에 쌀을 지원하고 있으며, 지난 광양서커스 페스티벌에는 개인 최고 금액으로 티켓을 구입해 어려운 노인들과 나눴다.

또, 광양 향교 전교 역임 당시 소나무, 동백나무 식수 및 집기 구입을 위해 2천여만 원 상당의 기부를 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눔과 봉사를 펼치고 있다. 정현무 어르신은 “광양에서 태어나서 광양에서 월급 받고 이만큼 살았으니 당연히 광양에 받은 것을 되돌려 줘야 하지 않느냐”며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나누는 기쁨을 누리며 살다 가고 싶다”고 말했다.

정현무 어르신은 골약면 중촌마을에서 1932년에 정계봉, 신대악 슬하의 5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고학을 했었던 어린 시절 얘기에 회상에 잠겼다.

“내가 성황초 4회로 졸업을 하고 15살에 여수상업야간중학교를 들어갔거든. 야간학교를 다니면서 수업이 끝나면 여수역으로 가서 12시 막차로 오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받아서 신문을 접는 거야. 그 접은 신문을 돌리려면 새벽 4시에는 나가야돼. 신문 다 돌리면 남산동에 있는 천일제재소에서 낮 시간 내내 일을 했지. 3년 동안 3~4시간 밖에 잠을 못 잤어.”



정 어르신은 그래도 1~2등을 놓치는 일이 없을 정도로 학업성적이 우수했단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패스하려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대학을 못갈 바에는 고등학교 졸업장이라고 있는 것이 낫겠다 싶어 3학년 2학기에 시험을 치고 여수공고로 들어간 것이다.

3개월 만에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고등학교 졸업한 것이 제일 잘한 것 중에 하나인 것 같다니까.”

정 어르신은 고등학교 졸업하던 해, 그러니까 1956년도에 바로 공무원시험을 쳤다. 합격하고서는 골약면사무소에서 호적길우사무(지금으로 말하면 주민등록사무)를 맡으며 공무원 생활이 시작됐다.

그렇게 시작된 공무원 생활은 골약동 산업계장을 거쳐 부면장, 진상면 부면장, 금호ㆍ태인 출장소 소장, 중마동 초대 동장까지 37년 동안 이어졌다. “나는 공무원이 천직이라고 생각했어.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었고 제일 보람도 있었지.” 정 어르신은 중마동 92만평 택지 개발 사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 다고 했다.

“그때는 허허벌판이었거든. 아무것도 없었지. 내가 초대 동장으로 부임해서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963세대를 이주 시키고 묘 2100개를 옮기는 일이었거든. 정말 밤도 낮도 없이 일했어. 주말도 없이 새벽이슬 맞고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니 우리 막내아들 녀석이 자기는 죽어도 공무원이 되기 싫대. 지금 포스코 다녀. 허허허.”

그렇게 열심히 발로 뛰며 세운 중마동은 내 집 같아서 예나 지금이나 새벽 4시가 되면 골목골목을 걸어 살피고 공한지와 도로를 돌본다. 정 어르신은 공무원 생활 중 3번이나 전남모범공무원으로 선정됐다.

전남에 근무하는 공무원 5만여 명 중에 20명 안에 들었으니 대단한 일이다. 덕분에 아내와 여행도 다녀왔다. 또,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우수공무원 표창도 받았다. 그리고 퇴직 한 이듬해인 1995년에는 통합 광양시의 초대 시의원으로 활동했다. 그 이후에는 광양향교 전교와 전남전교협의회장을 역임했으며 지금은 성균관 부관장을 맡고 있다.

정 어르신은 왜 연금을 모두 봉사에 쓰냐는 질문에 “자식들을 위함”이라고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내가 자식들을 위해서 돈을 물려주는 것보다 이렇게 공덕을 쌓아놓으면 다음에 나 없을 때, 도움이 필요할 때, 정현무 아들딸들이다 하면 사람들이 믿고 도와줄 것 아니여? 그래서 하는 거야. 애들도 반대 안하고. 허허.” 정현무 어르신은 마지막으로 아내 문호남(74) 씨에게 고마움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25살에 결혼해 지금껏 살아오면서 5남매를 키우면서 내조하는 게 보통일은 아니지. 그리고 내가 이렇게 나누는 것을 반대하지 않고 항상 응원해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건강하게 내 옆에 오래오래 있어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