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며
봄을 기다리며
  • 귀여운짱구
  • 승인 2008.02.27 17:29
  • 호수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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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조나라 김세광·복향옥부부의 귀농일기
 
어제는 비가 내렸다.
그다지 많은 비는 아니었지만 차분한 숙녀의 걸음걸이처럼 조금씩 조금씩 대지위로 물기가 스며들었다.
겨우내 메말라있던 백운산이 촉촉히 젖었고 산허리에는 엷은 안개가 드리워져 모처럼만에 씻은 듯한 산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비가 온 후라서 그런지 집 앞에 흐르는 계곡의 시냇물 소리가 우렁찼다. 한 겨울에 멈추듯 조용히 흐르는 물소리와는 확연히 달랐다.
우리는 안다.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만으로도 봄이 멀지 않았음을…마을의 몇 몇 집의 굴뚝에서는 살아있는 그림처럼 저녁 짓는 연기가 차분히 하늘로 피어오른다.
어둠의 그늘을 벗고 골목을 훈훈하게 맴도는 연기도 마을의 분위기를 평화롭게 만든다. 봄이 올 것 같다는 기운을 언제 느꼈는지 마을 사람들 몇몇이 논두렁을 태우고 있었다. 하긴 농부들이 겨울 몇 달 동안 농토에서 벗어나 방 안에서만 지내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들도 하루 빨리 새로운 일을 시작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

논두렁 넓은 곳으로 점차 불길이 번지더니 제법 멀리까지 불길이 퍼져나갔고 따뜻한 불기운이 내 얼굴까지 다가왔다. 노랗게 바랜 풀잎을 태우는 매캐한 냄새가 한편 향긋했다. 겨우내 말라있긴했지만 구수한 풀냄새가 아직 배어있었다. 좀 더 강인한 몸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저들은 몸을 태우고 다시 새옷을 갈아입는 것이리라. 조금의 시간이 더해지는 햇볕 따뜻한 날이면 그들은 이 대지위에 환희처럼 연푸른 새싹을 내밀 것이리라.

봄이 온다는 것은 죽어있던 가지에 새 생명이 다시 돋아온다는 뜻이기도하다. 하긴 이 세상에 봄을 기다리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 것인가 ? 봄이 없다면 우리에겐 기다림이나 희망과 같은 기대감도 없는 무미건조한 인생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얼어붙었던 대지에 봄기운이 찾아들면 긴장이 풀어지듯 마음을 옥죄었던 무거운 것들이 허물어질 것이다.
마른 나뭇 가지에 조금씩 물이 오르고 잎을 벗었던 가지가 제옷을 찾아입으면 우리는 그들에게서 새로움이란 희망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다가올 봄처럼 우리의 마음도 몸도 지나간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이 땅에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한 생활을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

결코 도시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계절의 변화와 새로운 대지의 기운을 한가롭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아이들과 강아지도 추위 걱정없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신이난 듯
개울가 곳곳으로 뛰어다니며 맑은 날의 축복처럼 하루를 흥겹게 보내었다.
가끔은 도회지에 두고온 친구들이 보고 싶어 안달을 하기도하지만 이곳 산 속이 주는 마음의 평안함과 밝음에 즐거워한다. 자연친화적인 생활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저들도 좀 더 커보면 알게 될 것이리라.

우리집에 찾아오는 손님들도 모처럼만에 환한 날씨에 마음이 밝아지고 발걸음이 가벼워진 듯하다. 그들을 위해 비발디의 사계나 봄의 왈츠 곡 등을 틀어준다.
레스토랑 내부와 정원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봄의 선율을 듣고 있노라니 새로운 인생에 대한 설계와 기대감이 내 안에 다가서는 듯하다. 그래 봄이 오면 해야 할이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
우선 무거운 겨울의 그림자와 어두운 그늘을 털어내어야 하리라. 바래어진 나무와 구조물에 밝은 색을 칠하고 강한 바람에 널부러져있는 나뭇잎과 길거리에 뒹구는 잔가지들을 걷어내고 장차 새롭게 태어날 새싹의 움틈에 방해가 되지않토록 담장도 정리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선 나무를 심고 꽃을 심어야 하리라.

나무와 꽃처럼 사람의 마음을 쉽게 움직이는 것도 없으리라. 아무리 기분이 언짢고 답답해있더라도 푸른 나무와 아름다운 꽃을 보면 마음이 금방 밝아지지 아니하던가 ?
심고 가꾸고 다시 계절이 바뀌면 저들은 어느듯 세월만큼 커져있고 우리는 그들이 자란 세월만큼의 쌓인 연륜으로 세상을 살아가리라. 시골생활의 매력이란 것이 바로 심고 가꾸고 세월을 기다리면 노력하고 정성을 기울인 만큼의 흔적이 눈앞에 굳건히 남아주는 것이다.

풍요로운 앞으로의 생활을 위해서도 새롭게 잡은 터전에 봄과 더불어 다양한 꽃과 나무를 심고 가꾸어 보리라. 그리고 계절마다 그들이 성장해나가고 변화하는 모습을 든든한 마음으로 바라볼 것이다. 봄을 이야기하는 이순간에도 나는 곧 찾아올 봄의 마력에 이끌리어 앞날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더 커짐을 느낀다.
봄에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또 다른 힘이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