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은 자유!
착각은 자유!
  • 귀여운짱구
  • 승인 2008.05.29 09:49
  • 호수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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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정한 우리집 보물1호인 아들 동하가 태어났을 때에도, 남편이 만들어가고 있는 금지옥엽-하진이가 태어났을 때에도 그랬다.
세상에 이렇게 예쁜 아기가 있을까, 하는 착각에 빠졌다. 하나님이 날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이렇게 귀한 선물을 주셨을까…머리카락 부터 발가락까지 아쉬운 게 없이 얼마나 이쁘고 완벽하던지…그때 사진을 지금 보면 웃음만 나온다.

날씬한 몸매에 비해 머리가 좀 크고 이마가 넓었던 동하는 거짓말 조금 보태면 스필버그의 E.T 같고, 누워있는 얼굴에 비라도 내리면 빗물이 다 콧구멍으로 들어갈 것 같은 하진이는 아무리 봐도 메주 스타일이다. 핑크색 옷을 입혀놔도 넙데데한 얼굴 덕분에 첫돌이 지나도록  ‘그놈 장군감이네’하는 말을 듣던 하진이 콧구멍은 지금도 넓은 상태여서 엄지손가락도 들락들락할 정도라 10년쯤 후에 보면 또 박장대소할지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지금은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수 년 전, 광양땅을 처음 밟았을 때는 그저 하나의 낯선 소도시였다. 광양읍을 벗어나면서부터는 가로등 하나 없는 탓에 저수지 옆을 달리는 내내 사지가 간질간질하고 정수리가 쭈뼛쭈뼛 했다. 세상에…이런 촌구석이 뭐가 좋다고 큰 언니는 순천에서 이사를 했을까 투덜거리며 깜깜한 시골길을 하염없이 내달려 들어온 곳이 하조마을이었다.

집을 나선지 7시간 여 만에 도착했으니 반가운 얼굴 아니면 엄두도 못낼 여정이었다. 조금은 게으름을 부리고 싶던 다음날 아침 부지런한 큰 언니는 아침밥을 벌써 올려놓고 우리를 흔들었다.
성불계곡을 봐야한다는 것이다. 한다면 하는 큰언니 성화에 못이겨 무거운 발걸음을 차로 옮겼다. 내 고향 충청도 청양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시골마을 풍경에 시큰둥하던 나는 계곡 입구에서부터 감탄사를 연발했다. 우거진 나뭇잎들 사이로 들어오는 화살같은 아침햇살이 신비로웠고 폐속 깊이 느껴지는 바람이 황홀하기까지 했다. 나무, 물, 바람, 바위, 햇살…어느 것 하나 그림 아닌 게 없었다.

금세라도 신선이 나올 것 같고 내가 와서 살면 나도 신선이 될 것 같았다.  그런 착각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한다. 며칠 전에는 옥룡 추산마을로 나들이를 했다. 봉강면과 옥룡면을 잇는 새 도로는 산천을 둘러보며 운전해도 좋을 만큼 한적했다. 고개를 넘어 내려가는 순간 “와~, 멋지다. 한계령을 넘고 있는 것 같애” 하며 신나하는 내게 남편은 피식 웃음으로 답을 했다. 그 김 빠지는 소리가 내 기운을 뺄 뻔 했지만 아랑곳 않고 나는 즐거운 상상을 계속 했다. 읍에서 마을로 들어오다 보면 이탈리아를, 알프스를 여행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울창한 숲이나 커다란 바위는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을, 구름이 휘감은 높은 산은 알프스를 회상하게 한다. 카메라를 챙기지 못한 게 아쉬워 언젠가 디카에 담았더니 속만 더 상하고 말았다. 봉강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담지 못하는 디카만 탓했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수동 카메라를 들고 나가리라. 우리가 광양으로 이사하는 게 결정이 되자 큰 언니가 젤 먼저 하는 말, “니네가 온다니까 시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백일홍을 쫙~심었더라”.  이사온 후에 내가 덧붙였다. “우리 가게 오시는 손님들 보라고 코스모스까지 심었네”  언니랑 나는 이렇게 가끔 즐거운 착각을 하면서 행복에 빠지기도 한다.  

이렇듯 착각은 남들이 보면 유치할 수도 있고 지나치면 병이 될 수도 있겠지만 긍정적인 그것은 오히려 삶의 활력이 되기도 한다. 적어도 내게는. 오늘같이 비 내리는 아침이면 또, 커다란 창가에 앉아 샹송을 배경으로 하고 커피를 마시며 유럽을 여행하던 시절을 회상하고, 그 속에 있는 나를 느끼며 잠시 행복에 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