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남농원에 정착을 하고
가남농원에 정착을 하고
  • 가남농원 김승희, 황규원
  • 승인 2008.11.20 09:09
  • 호수 2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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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28일 정들었던 창원의 생활을 정리하고  현재 살고 있는 다압면 섬진매화마을 로 이사를 하게되었다. 경남 창원에서 살게된 것은 아이들 교육문제 때문이었는데 그곳에서6년동안 이웃들과 함께 했기에 떠나 온다는 것은 여간 쉬운게 아니었다.

그렇게 많은 고민 끝에서야  전남 광양의 다압면에서 시골생활을 하기로 결정을 했지만 막상 이곳에 와서 무슨일을 해야 할까 하고 고심을 했지만 딱히 마땅한 결정을 못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당분간은 ‘조용히 자연을 벗삼아 살아야지’ 하고 체념 아닌 체념으로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환경은 다르지 않고 따분한 연속의 나날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사 온 곳이 10년전 4000평의 땅에 매실을 심어 두었던 상태라 여기에서 달리 할 수 있는 사업이란 매실이 아니고는 달리 할만 한 게 없었다.

그렇게 6월이 되면서 매실수확은 시작되었지만 그동안 나무만 심어놨지 관리를 하지않아 수확은 그리많지 않았는데 귀농을 결심하던 첫 해부터 매실수확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난생처음 남편과 5시에 일어나 아침마다 4000평의 매실밭을 매실 한 그루마다 낫으로 풀베기를 해주었는데 하루에 두줄씩 10일을 작업을하면서 서로를 쳐다보면 땀 범벅이된 얼굴은 영락없는 시골농부가 따로 없었다.

그렇게 첫해 매실 수확은 7톤으로 전향 인터넷을 통해 판매해 제법 소득을 올렸다. 당시 인터넷 판매의 장점은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러나 인터넷 거래는 생명이 신용과 믿음 그 자체이다. 확실하지 않는 제품, 하자가 하나만 눈에 뛰어도 가려내야하며 철저하게 제품이 확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믿어주고 신용이 생기며 자연적으로 거래는 성사된다는 점을 말이다.

그날 주문된 인터넷 물량은 새벽 5시에 일어나 그날 그날 매실을 따서 정성껏 보내고 보낸 다음에는 보냈다는 문자까지 보내고 나면 보통 밤 12시가 다반사였다. 이렇게 한 달 동안 매실 작업에 맫달려 힘들고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지만 그 재미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른바 보람인 셈이다.

별을보고 아침에 나가면 별을보고 들어왔으니 농사라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두 사람이 그냥 재미있어 열심히 일했고 수확의 보람이 결실로 직결되니 재미는 더했던 것이다. 내손으로 일을 해 냈다는 자부심과 농사를 지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던 일종의 동기 유발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한 달 동안 매실을 수확하느라 집밖에는 나가보지를 못했다. 그렇게 한 달 만에 쇼핑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백화점 안이 딴 세상으로 느껴졌고  시골아이가 도시에 오면 어리둥절해 하는 그런 상태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