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최고 대장장이 김예섭 향우
이 시대 최고 대장장이 김예섭 향우
  • 태인
  • 승인 2007.11.07 18:29
  • 호수 2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향사랑 가슴에 담고 인생 담금질 해요”
 
지난 10월 27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은평구 모래내시장 건너편 10평 남짓한 모래내대장간. 약속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해 대장간에 들어서자 김예섭(64) 향우가 화덕에서 막 꺼낸 시뻘건 쇳덩이를 모루위에 올려놓고 담금질이 한창이다.

옥룡면 운곡리 은죽마을 출신으로 46년 망치밥으로 살아 온 김예섭 향우는 지난 87년 한 박물관에서 가야시대의 갑옷 샘플을 가져와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해 만든 것을 계기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MBC드라마 ‘허준’과 KBS ‘불멸의 이순신’에 나온 쇠로만든 소품들 상당수가 그의 작품이일 정도. “광양신문이 창간 8주년을 맞이했는데 뭐 도울 일이 없을까요. 광양신문을 보면 고향생각에 눈시울을 붉힐 때도 있고, 선·후배들 소식에 기뻐하며 마치 고향에 있는듯한 데…”라며 식구 대하듯 정감이 넘친다. 바로 고향사람 그 자체다. 그는 옥룡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 집근처 대장간을 놀이터 삼아 하루를 보내며 대장장이들의 손에서 만들어 지는 호미와 낫 괭이 등을 보며 지금을 꿈꿨다.

그는 열여덟 살이 되던 해 자신도 대장장이가 되겠다며 풀무질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버님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군생활을 마치고 69년 다른 일을 찾아보겠노라고 서울로 상경한 그였지만 대장장이의 미련은 버릴 수 없었다.

손재주도 남달랐던 그는 6년의 망치질 끝에 진짜 대장장이라고 할 수 있는 집계잡이가 됐다. 당시 새마을운동의 여세에 힘입어 삽과 괭이 등은 만들기 바쁘게 동이났다. 60~70년대 현재의 동대문운동장 주변 수 십 개의 대장간들이 그랬다.

그 후로 45년…이제 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장인으로 인정 받고 있다. 박물관에는 그가 만든 가야시대 갑옷과 고구려시대  투구 같은 철기 유물의 복제품이 전시돼 있고, 역사 드라마 속 배우들은 그가 만든 소품을 들고 연기를 한다.

김예섭 향우는 “돈벌이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기술을 알아주는 고객에게 보답하기 위해 일한다”며 철저한 장인정신으로 한우물만 파온 진정한 광양인이다. “광양신문을 보면 고향이 발전 일로를 걷고 있는 것 같은데 생각보다 좀 더딘 것 같아요. 인구도 정체돼 있다고 하고 광양신문이 앞장 서 주세요.” 지역에 대한 자부심도 강했다. 그리고 서울에 흩어져 있는 향우들의 결집도 시사한다.

대단한 사람 아닌데, 신문에 날 수 있겠느냐며 손사래를 치는 그를 붙잡고 모래내대장간 건너 편 한 식당에서 고향 광양만 사랑하면 충분하다고 나눈 이야기들은 한편의 드라마처럼 이렇게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