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사의 어제와 오늘’펴낸 신영길 향우
‘한국근대사의 어제와 오늘’펴낸 신영길 향우
  • 귀여운짱구
  • 승인 2008.04.03 08:59
  • 호수 2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치인과 경제관료, 금융인, 언론인 지낸 현대사 증인
진월면 마룡리 마동마을이 고향인 신영길(85)향우가 최근 서울생활을 뒤로하고 고향 인근에 살면서 ‘한국 근대사의 어제와 오늘’을 펴내는 등 그가 지내온 하루하루가 곧 살아 있는 한국현대사 임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그의 이력은 한마디로 기네스북 감이다. 실제로 그는 지난 95년 기네스북 기록 인증서를 받은 장본인이다.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는데도 장서 5만5200권이라는 많은 책을 사 모은 끝에 기네스북의 반열에 올랐다.
1926년 진월에서 출생해 38년 진월공립보통학교(현 진월초등학교) 4년제 졸업과 41년 진월공립보통학교 6학년을 졸업한 그는 조선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이어 일제강점기인 47년 조선변호사 예비시험에 합격한다. 그는 6.25 전쟁이 발발하기  두달 전인 50년 4월 제1회 고등전형고시(행정고시)에 합격했다.

54년에는 서울 경회루서 있은 제1회 전국한시대회에서 ‘이산가족’으로 장원을 차지한다. 휴전 후 상황을 잘 웅변한 결과다. 신영길 향우는 해방 후 짧은 경찰관 생활을 포함해 청와대 비서실을 거쳐 행정관료, 은행지점장, 야당 중진의 정치 보좌역에서 고서, 고지도 수집가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다양하다.
그의 인생은 미국 유학파 거물이었던 김우평(외자처장·국회의원·부흥부장관)의 정치담당 비서직으로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시작된다.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과 역사의 인물들을 현장에서 만난다.
신익희, 장면 선생을 따라다니다 보니 이승만 진영에 찍혀 억울하게 고문당하고 후유증으로 중장애인 신세까지 된다. 당시 그 유명한 ‘못살겠다 갈아보자’ 구호도 제3대 정·부통령 선거때 그가 만들어낸 것이다. 민심을 정확히 읽어낸 이 구호는 두고두고 전 국민에게 회자된다.

이밖에도 그는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여순사건 때는 7일간 돌무덤에서 물 한 방울 못 마시며 숨어 지냈고, 자유당 치하에서는 민주당 선거운동을 하다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간발의 차이로 피살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1980년 신군부 집권 때는 ‘사형수 DJ’의 구명탄원서를 써줬다가 직장을 잃었다.
그래서 그가 지내온 하루하루가 곧 살아 있는 한국현대사다.

신영길 향우는 진월의 보통학교 입학 후 아버지를 따라 간 쌍계사에서 우연히 태극 문양을 보았다. “아버지는 ‘저 그림이 우리나라 태극기에 있는 태극’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처음 듣는 이야기여서 ‘태극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일본에 합방되기 전 우리의 국기라고 하시더군. 얼마 후 학교 미술시간에 태극을 그리고 그 옆에 ‘태극기’라고 한글로 적어 제출했지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주재소에 가자고 하더군. 11살밖에 안 된 나를 불도 없는 캄캄한 유치장에 그냥 가두었어요. 밤새 울면서 덜덜 떨었지.”
그의 조부가 동학군에 가담한 전력이 있는 데다가 ‘태극기 사건’까지 겹쳐 그는 광복이 올 때까지 ‘불온분자’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낙인찍혔다.

그는 한국장서가협회 회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동안 모은 7만권 중 6만권은 명예정치학박사학위를 받은 광운대에 기증했고 나머지는 이화여대에 보냈어. 그동안 고향에는 한 것이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찾아봐야지. 고향이 너무 변했어. 58년에 서울을 갔으니까. 고향은 50년 만이니 너무도 많이 변했어.”
신영길 향우는 2006년 순천으로 이사왔다. 그의 최신작 호당 신영길 문집 ‘한국 근대사의 어제와 오늘’은 일본이 침략초기 소위 용병협정을 체결해 우리나라를 예속시키기 위한 실상들을 구체적인 정황과 여러 설득력 있는 증거자료를 통해 잔잔히 그려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