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래의 우리고장 문화탐방기 총괄①
조동래의 우리고장 문화탐방기 총괄①
  • 광양뉴스
  • 승인 2014.01.06 10:23
  • 호수 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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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재첩잡이

위치와 지형 

광양은 남해안의 중심지역이다. 남도에서 가장 높은 백운산(1,228m)은 등심역할을 하고 있으며, 동쪽에 있는 섬진강(223.8Km)은 유일하게 남쪽으로 흐르며 전남과 경남을 경계하고 있다. 소백산맥의 남단에 해당하는 백운산은 북쪽에 솟아 있고 서쪽에 도솔봉ㆍ형제봉ㆍ동주리봉 등과 동쪽의 매봉이 동서로 늘어서 있어 광양은 배산형(背山形) 형국이며 산악지대다.

서쪽은 순천과 접해 있고, 백운산 넘어 북쪽은 구례군이며 남쪽은 광양만으로 형성돼 있다. 읍지(1832년, 壬辰 刊行)에 12면 행정단위가 수록돼 있으며 산성은 마노산성ㆍ중흥산성ㆍ불암산성이 있고, 산은 백운산ㆍ가야산ㆍ건대산(구봉산)ㆍ도솔산ㆍ계족산ㆍ백계산 등이 표기돼 있다.

해안선과 강변 길이는 약 64Km와 50Km 정도이나 안타깝게도 명소(絶景)로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천연자원이 없다. 섬진강은 연간 강수량이 국내에서 가장 많은 1,920㎜로 다우지역이며, 평균기온은 13.9℃이고, 1월 평균은 0.7℃이며, 8월 평균은 26.4℃ 이지만 갑작스런 기후 변화로 기온은 점차 상승되는 추세이다.

광양만은 1980년대 초에는 유인도 13개와 무인도 21개가 있어 다도해를 이루었으나, 광양제철소의 건설로 인하여 부지건설과 컨테이너 부두가 축조되면서 매립, 매몰되었고 간척사업공사가 계속됨에 따라 현재는 6개의 무인도가 남아있다고 지명총람에 기록돼 있다.

그러나 확인결과 조사할 당시는 컨테이너부두가 완성되기 전의 자료가 수록되는 관계로 오기인듯하다. 2013년 말 현재 유인도 2개(태인ㆍ금호도)와 무인도 1개(배알도)이며 묘도 앞 지신도 까지 제철소부지에 연결되어버렸다.  
                            

수어호 억불봉


역사

구석기시대 유적ㆍ유물은 봉강면 석사리, 옥곡면 대죽리, 옥룡면 용곡리ㆍ죽천리, 진상면 지원리 등 6개소에서 다수 발견되었다. 신석기시대 유적지와 유물로는 진월면 오사리ㆍ진정리의 빗살무늬 토기편이 발견되었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것으로는 광양읍ㆍ옥룡면ㆍ봉강면ㆍ진상면ㆍ옥곡면 등지에 고인돌 군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아울러 돌칼ㆍ돌도끼ㆍ돌끌ㆍ조개무지 등도 발견되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 54국 중 하나인 만로국(萬盧國)이 광양지역이라고 하나, 옥룡면 죽천리 내천마을이나 진상면 비촌마을에 변한의 성지(城址)라고 전해 내려오는 유적이 있어 변한의 영역에 속했을 가능성도 있다.

신라 말엽 풍수지리설의 창시자로 알려진 도선(道詵)이 백운산 옥룡사에서 독자적인 선문를 개설하였다고 전해진다. 광양의 명칭은 5번 개명됐으며 처음 마로현 약 400년(백제 346·374~757)이고, 다음 희양현 183년(757~940)간이며, 광양현은 955년(940~1895)간이다.

근대의 광양군은 100년(1895~1995)을 유지하였으니 그 이후 1995년 1월 1일부터 현재까지 광양시로 부르고 있다. 1760년 기록에 광양현 12면 중 칠성면은 72호 288명으로 최저였고, 다압면은 408호에 1,445명으로 최고였다. 

1413년(태종 13)에 현감이 파견되었으며 1597년(선조 30)의 정유재란 때 왜장 고니시(小西行長)의 침공을 받았으나 치열한 전투 끝에 왜군을 물리쳤다. 그러나 이 전투 결과로 광양현이 폐허화됨에 따라 1598년 순천에 편입되었다가 얼마 뒤 다시 분리되었으나 피폐한 읍세는 쉽게 회복하지 못했다.


유당공원

조선 말기 때 두 차례(1869ㆍ1889년)에 민란이 발생한 것도 이 같은 지역적 여건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때 패퇴한 농민군이 광양과 섬진강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으며, 이 때 섬진강에 빠져 죽은 자가 3000〜4000명이나 될 정도로 큰 손실을 입었다.

행정구역이 개편될 때 13도 체제로 다시 개편되었고 이때 전라남도에 속한 광양군이 되었다. 광양지역은 국가적으로 수많은 외침을 받고 백성들의 삶이 피폐했지만 그중 가장 큰 상처는 정유재란  때인 1598년에 읍성을 침탈을 당한 것과 여순반란사건으로 인한 백운산 토벌작전과 연이은 6.25의 전란으로 수많은 목숨과 재산의 손실을 입게 된 상처일 것이다.

1906년 백낙구(白樂九)ㆍ황순모(黃珣模) 등을 주축으로 한 의병항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으며, 이는 전라도 의병봉기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1914년 일제가 지방행정체제를 개편할 때 칠성면ㆍ우장면ㆍ사곡면 등이 광양면으로, 진하면과 월포면이 진월면으로 통합되고 돌산에 이속시켰던 여러 섬이 광양으로 돌아오는 변화를 겪었다.

1915년 섬진강 연안의 다압면 섬진리가 경상남도 하동군으로 이속되었다. 또한 1923년 농민 500여 명이 단합해 소작쟁의를 일으켰으며, 이듬해 1월에는 골약면에서 소작쟁의가 일어났고, 1932년 1월에는 금광 광부 800여 명이 동맹파업을 하는 등 일제의 경제적 수탈에 항거하는 운동이 어느 지역보다도 활발하게 일어났다.

1948년 여수ㆍ순천 사건의 잔당들이 백운산에 은거하면서 광양을 약탈 대상으로 삼아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1949년 광양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66년 골약면에 태인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1986년 골약면과 태금면 및 옥곡면 광영리 일대를 관할하는 광양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1989년 광양출장소를 동광양시로 승격, 광양군에서 분리되었다.

1995년 시군 통합에 따라 광양군과 동광양시가 통합해 광양시로 되었다. 1998년 광양시 과ㆍ소ㆍ동 통폐합으로 황금동ㆍ성황동이 골약동으로, 금호동ㆍ금당동이 금호동으로 통폐합됐다.


유물ㆍ유적

구석기시대 유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인근지역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존재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 진다. 신석기시대 유적으로는 진월면 오사리ㆍ진정리ㆍ증산의 패총에서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되었다. 오사리 패총은 패각 층을 나타내는 대규모 패총이다.

청동기시대 유적은 고인돌만 알려져 있다. 36곳에 284기의 고인돌이 분포해 있는데, 봉강면 지곡리와 옥룡면 산남리 고인돌군은 군집되어 있다. 발굴된 옥곡면 원월리 고인돌에서는 석곽형 석실 5기가 확인되었고, 석검ㆍ석부ㆍ석촉ㆍ어망추ㆍ지석 등 다양한 석기류와 공렬토기·붉은 토기·민무늬토기 등 토기류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광양읍 덕례리 회암에서 미완성 석검이 발견되었다.

원삼국시대 유적으로는 조개더미와 집터 추정지가 있다. 봉강면 석사리 옥현 조개더미가 있으며 이곳에서는 사슴뿔을 이용한 도자병과 경질무문토기ㆍ우각형 파수ㆍ시루 등 다량의 토기가 출토되었다.

주거지로는 광양읍 용강리ㆍ덕례리ㆍ인서리 등 강변 퇴적평지와 구릉사면에서 원삼국시대 토기 편들이 발견되고 있다. 산성으로는 백제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중흥산성과 마로산성(馬老山城)·불암산성(佛巖山城) 이외에 광양읍성 지ㆍ내천현지(奈川縣址) 등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옥룡면 운평리에 중흥산성 삼층석탑(보물 제112호)ㆍ중흥사 석조지장보살 반가상(中興寺 石造地藏菩薩半跏像,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42호)ㆍ광양 성황리 삼층석탑(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호), 옥룡면 동곡리에 송천사지 회은장로비(松川寺址悔隱長老碑,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82호)가 있으며, 이 외에 옥룡사지석탑·보운사지석등·송천사지(松川寺址)의 부도 군과 석조(石槽), 그리고 백운사 목조삼존불감이 있다.

옥룡사지(사적 제407호)에서는 도선국사비편ㆍ동진대사(洞眞大師)비편과 비각 건물지가 발굴됐다. 현존하는 사찰로는 옥룡면 추산리에 도선이 「도선비기(道詵秘記)」를 지었다는 옥룡사지가 있고, 운평리에 중흥사, 동곡리에 백운사(白雲寺)ㆍ상백운암(上白雲庵), 봉강면 조령리에 성불사(成佛寺)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광양향교(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1호)가 광양읍 우산리에 있으며, 최산두(崔山斗) 등을 모신 봉양사(鳳陽祠)와 유학을 교육시킨 흥학재(興學齋)가 있다. 정자로는 유당공원 안의 유림정(柳林亭)과 봉강에 있는 거연정(居然亭)이 있고, 최산두가 수학했던 학사대(學士臺)가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광양읍 인동리에 유당공원 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235호)ㆍ옥룡사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제489호)가 있다. 기타 문화재로는, 광양궁시장(弓矢匠ㆍ김기,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2호)이 있고, 수령이 500년 된 광양향교 은행나무와 옥곡면 장동리 팽나무, 광양읍 인서리 느티나무 숲이 있다. 태인동에 김시식지(전라남도 기념물 제113호)가 있으며 해설사가 대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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