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욱 교수와 윤동주 시인의 만남
정병욱 교수와 윤동주 시인의 만남
  • 광양뉴스
  • 승인 2014.08.25 09:49
  • 호수 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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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의 대가 정병욱 9

조동래 시인·수필가
근래 우리는 관광지로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과 만주 용정은 물론 몽골까지 찾아가고 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이유는 역사는 물론 우리와 많은 유사성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지만 민족의 혼을 품고 있는 백두산 천지가 인근에 있고 오래전부터 자유로운 삶과 가난을 탈피하고자 동토를 찾아 황무지를 개척했던 선현들의 피와 땀이 서린 곳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명동촌과 용정에 형성된 한인 마을은 독립운동의 모체로 슬픈 역사를 안고 있다. 특히 민족의 시인 윤동주가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일제의 폭압 때 일본의 감옥에서 죽음을 당한 후 시신이 고향으로 돌아와 묻혀있는 유적지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묘비와 시비가 세워졌으나 해방 후 여러 가지 여건으로 잊어져가고 있을 때 발굴되어 근래에 명소로 부상하고 있는 내용을 조명해본다.

이 내용은 길림성지역 한인에게 윤동주를 알리기 위해 기록한 것으로 2000년 5월『吉林省 內部資料性出版物第 20004059?』발간된 자료에 의한 것이며 편집 없이 전재한다.

‘그동안 묻혀있던 민족시인 윤동주가 연변한인에 알려진 것은 1980년대 중엽이다. 그것도 한 낯모를 일본인 학자에 의해서였으니, 1985년 4월 12일 오오무라 마스오(大村益夫)라고 하는 50대의 일본인이 연변을 찾아왔다. 제주도 출신의 조선인부인 아끼꼬(秋子) 여사를 동반한 걸음이었다.

오오무라 선생은 일본의 명문대학 - 와세다대학교의 교수인데 체류 명목상 연변대학에서 일본어 교수직을 담당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옛 북간도 땅에서 활동했던 조선인 문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그들의 잘 알려지지 않는 문학 업적을 추적하고 정리할 목적을 가지고 왔던 것이다.

워낙 중국문학을 전공했던 오오무라 교수는 1956년경부터 한국문학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가정의 격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조선인 처녀를 부인으로 맞아들이고 열심히 조선말을 익히고 조선 문학을 섭렵하면서 최서해, 김정한, 정지용, 리륙사, 윤동주 등 많은 작가와 시인들의 작품에 몰두하였다. 그러나 가장 큰 매력을 가지고 깊이 파고든 것은 윤동주 시었다.

그는 윤동주의 시집《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를 읽고 느꼈던 크나큰 감동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동주의 작품을 더욱 깊이 리해하고 그의 인간적인 면을 더 깊이 알려고 하던 끝에 우연하게도 일본 도꾜에서 윤동주 시인의 아우인 윤일주교수를 만나게 되었다.

1984년 여름, 나는 당시 일본에 와있던 윤일주(윤동주 동생)씨를 만나 도꾜히비야(日比野)의 한 다방에서 약 2시간가량 그의 형에 관한 많은 사연들을 들을 수가 있었다. 당시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병색이 완연했던 윤일주씨는 나의 요청을 쾌히 받아들여 나를 만나 주었고 그가 아는 그의 형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다 말해주었다.

40여년이나 세월이 흘렀음에도 윤동주가 도꾜 유학시절 읽던 책 보따리 속에 어떠어떠한 책이 들어있었다든가 등, 룡정에 있는 윤동주의 묘소가 있는 곳까지 약도로 그려주었다.

그때 나는 윤동주의 묘소와 그가 살던 고향을 찾고 싶은 강열한 충동적 욕구를 느꼈다. 그것은 윤동주를 요절케 한 일본인의 한사람으로써 느끼는 죄책감 같은 착잡한 심경과 그를 훌륭한 시인으로 존경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묘소를 참배하고 그의 한(恨)을 위무하며 그를 더욱 진실하고 깊이 이해하기 위해 그가 고향에 남겨놓고 간 흔적을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물론 윤일주씨의 간곡한 부탁도 있었지만 윤동주의 고향을 찾고 싶은 마음은 내 스스로의 간절한 소망이기도 했다.’라는 기록을 보았기 때문에 옮긴 것이다.

오오무라 교수는 그의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용정지역 에 살고 있는 주민의 협조와 연변대학의 관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시인의 고향집과 명동소학교는 물론 은진중학교를 찾기 시작했다.

각고 끝에 찾은 그곳은 윤 교수에게 들었던 것 보다는 거리와 지형 등의 변화가 약간 있기는 했으나 묘비를 찾는데 성공했고 용정중학교 교정에 세워진 시비와 학적부도 확인했다. 연장되는 답사기(踏査記)가 남아 있으니 다음호까지 그 내용은 마무리하겠다.    <다음호에> 글/ 조동래 시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