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는 사회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는 사회
  • 귀여운짱구
  • 승인 2008.03.27 09:00
  • 호수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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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기만한 서울에서 살던 내가 10년 전 광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을 때 바다와 강과 계곡이 있는 물의 도시 광양에서 살게 된 것이 참 행복했다. 사람들은 광양을 “철의 도시”, “빛의 도시” 라고도 하지만 내가 살며 만난 광양은 물의 도시였다. 큰 컨테이너 선박들이 떠다니는 바다,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 그리고 수정같이 맑은 물이 흐르는 어치, 옥룡, 금천 계곡 등 바다와 강과 계곡이 어우러진 물의 도시 광양은 매력적이었다. 

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며 집 거실에 제법 규모가 있는 수족관을 준비하여 열대어를 키우기로 했다. 여과기를 밑에 깔고 그 위에 작은 돌들을 놓고, 수초도 심었다. 온도를 맞추기 위해 히터도 꽂아주고, 폼 나게 모형 물레방아도 넣고, 산소발생기와 온도계까지 꽂아 놓으니 제법 그럴듯한 열대어 수족관이 되었다. 쿠피, 엔젤 등 맘에 드는 열대어들을 사다 넣고 먹이를 주며 하루에도 몇 번씩 쳐다보았다. 열대어들이 알을 낳고 부화하여 열대어 숫자가 늘어날 땐 기르는 재미가 제법 솔솔 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열대어 기르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나로 하여금 열대어 키우는 재미를 포기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물갈이였다. 물갈이, 이게 간단치 않았다. 수족관의 크기가 제법 커서 물을 한번 갈아 주려면 거실 바닥에 물을 흥건하게 흘리는 건 예사였고, 물갈이를 할 때마다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곤 했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때 맞춰 물갈이를 하는 것이 게으른 내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결국 열대어 기르는 것을 포기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 “물갈이는 쉽지 않다.”   
선거철인 요즘 뉴스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에 하나가 “물갈이”이다. 수족관의 물을 갈자는 것이 아니다. “물갈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 찾아보니 두 가지 뜻이 있었다. 하나는 “수족관이나 수영장 따위의 물을 가는 일”이고, 또 하나는 “기관이나 조직체의 구성원이나 간부들을 비교적 큰 규모로 바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사전에 나오는 이 두 번째 물갈이가 매번 선거 때만 되면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물갈이다. 각 당이 국회의원 후보를 공천하면서 “물갈이” 라는 단어가 이슈가 되었다.   1958년 신익희 선생이 내걸었던 “못 살겠다 갈아보자” 라는 선거 구호는 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구호란다. 어느 당은 물갈이 폭이 40% 라고 하고, 어느 당은 25% 라고 하며, 이번에는 뭔가 변화가 있을 것 같다고 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국민들은 이미 정치인들의 당리당략과 계파와 파벌 싸움에 식상한지 오래 되었다.
한편에서는 물갈이 된 대상자들이 왜 내가 물갈이 대상이냐고 분노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물갈이에 불만을 품고 다른 수족관을 찾아 가기도 하고, 홀로 수족관을 만들어 물을 다시 주워 담으려 하는 이도 있다.  

물이 고여 있으면, 썩고, 더러워진다. 그래서 물갈이가 필요한 거다. 물갈이의 목적은 더러워진 물을 깨끗하게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갈이 할 때는 맑고 깨끗한 물로 갈아 주어야 한다. 물갈이 한 후에 더 더러워진다면 그게 어디 물갈이인가? 변화가 없는 사회는 불행해 질 수밖에 없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인 그런 사회 말고 어제 보단 나은 오늘,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그런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이 나라가 소외되고 아파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 없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되어 가면 좋겠다. 몇 몇 사람만 바뀌는 물갈이가 아니고 이 나라 지도자들이 정말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진정한 변화를 이루어 가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한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는 사회” 생각만 해도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