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아내
철없는 아내
  • 귀여운짱구
  • 승인 2008.05.22 09:48
  • 호수 26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바쁘니?”
일본에 있는 둘째언니의 첫 마디는 늘 이렇다. 바쁘다 말하면 다시 할께, 하면서
동시에 전화를 끊고, 괜찮다고 해야 비로소 길고 긴 국제통화가 시작된다.
“언니! 난 아직도 철이 없나봐” “왜, 무슨 일 있어?”

“그게 아니라…손님이 없으면 심난해야 하는 거 아냐? 근데 난 가끔, 좋은 거 있지” “얼마나 힘들면 그러겠니. 그렇게라도 가끔 쉬어야 또 일을 하지” “애고, 누가 들으면 엄청 바쁜줄 알겠네. 아님 장사를 몇 년 했다든지. 하하” “하하. 그건 그렇다…어쨌든 너 힘든데 도와주지 못해서 너무 너무 미안해. 맨날 궁금해서 전화 자주하고 싶은데 바쁜 시간일까봐 이리저리 재다보믄 그냥 하루가 지나가드라. 너 혼자 고생시키는 거 같애서 안쓰럽고.…”

“별소릴 다 하셔요. 누가 시켜서 하우? 내가 좋아 하지(내가 좋아서?…그건 아닌데…맘 쓰지 마, 괜히 투정하는 거니까…김서방한테나 큰 언니한테는 못하니까 뚝 떨어져 안 보이는 언니한테 해보는 소린데, 언니가 그러니까 괜히 말했다 싶잖아…나 스스로 생각해도 내가 기특하고 대견해서, 칭찬받고 싶어서 이 나이에 투정부리는 거야”
“그래. 너 진짜 대단해. 나, 작년에 일주일 일해보고 두 손 두 발 다 들었잖니. 난 죽었다. 깨나도 그 일 못하겠드라” “당연하지. 내가 언니보다 팔뚝이 굵잖아. 하하하…팔뚝만 그런가? 다리도 튼튼해서 쟁반들고 이리저리 얼마나 잘 뛰어다니는데…” 웃으려고 수선 떨었는데 웃음이 잘 나오지 않는다…전화선 저 쪽도 조용하다.

“언니?…”
내 마음의 기운을 느꼈는지 언니 목소리가 먼저 잠긴다. 산골마을의 특성을 잘 몰랐던 초기에는 분위기만 좋으면 한겨울에도 손님이 적잖을 것으로 예상했었다. 작년 가을, 동하친구 엄마들이 왔을 때 “눈 내리면 통창으로 내다보는 풍경이 얼마나 멋지겠어”했더니 유리엄마 하는 말, “언니. 봉강은 눈 오면 사람들 안 와”한다.

광양읍에 눈이 내리면 봉강에는 눈이 쌓였겠다,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겨울은 기대하지도 않았었다. 그렇다고 아예 손을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언제 누가 올지 모르니 반찬도 준비해야하고 홀 청소도 해야하고, 집안일도 해야하고…남편은 끝도 없는 바깥일에 여념이 없으니 가게와 집안일을 내 몫이다. 매일이다시피 출근해서 청소를 도와주던 큰언니가 한동안 못 올라오는 틈에, 이 철없는 아내는 떼를 써서 숙식하는 도우미를 구하고야 말았다.

인건비를 아껴야할 판에 내 몸이 먼저다, 고집한 것이다. 전에는 해 보지도, 들어 보지도 못한 일을 씩씩하게 하고는 있었지만 밤마다 천근씩 만근씩 어깨에 올라붙는 피로감은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난 철만 없는 게 아니다. 눈치도 없다. 작년 2월, 고로쇠장사 역시 들어본 적도 없는, 방으로 음식을 날라본 적이 없는 나는 날마다.  허둥지둥, 엄벙덤벙, 실수 연발이었다. 맘만 급해서 자꾸 뭔가 빠뜨리는 것이다. 쌈장이다. 물티슈다, 바비큐가마에 구운 마늘이다. 하면서 딴에는 손님한테 최선을 다한다고 열심히 챙겨 나르는데, 여인과 함께 오신 남자손님 하시는 말씀, “아줌마! 필요하면 부를 팅께 그만 들어오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