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 귀농 일기] 마을주민 나들이
[천방지축 귀농 일기] 마을주민 나들이
  • 광양뉴스
  • 승인 2019.08.18 20:00
  • 호수 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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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식 시민기자

 

이우식 시민기자
이우식 시민기자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고추밭을 찾았다. 두 시간 쯤 일을 했는데 벌써 7시가 넘었다.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 한다. 오늘은 마을주민 나들이가 있는 날이라서 평소보다 빨리 일을 끝내야 한다. 출발시간에 맞추기 위해 대충 샤워를 마치고 회관으로 나갔더니 대형 버스 두 대가 시동을 걸고 대기 중이다.

마을 어르신들 대부분이 나와 계셨고 젊은 사람들은 준비된 음식과 음료 등을 챙기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미안하고 멋 적은 표정으로 보이는 분들마다 인사를 드리고 시계를 봤더니 7시30분, 아직 출발 하려면 30분이나 남았는데 모든 준비는 이미 끝나 있었다.

마을 행사가 있을 때 마다 수고를 아끼지 않는 미녀 삼총사(최갑이 부녀회장, 이정자 청년회장 사모님, 정복숙 여사님)의 덕분에 일사천리로 나들이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1호차에는 70세 이하의 젊은(?)사람 위주로 탑승을 하고 2호차에는 88세의 동숙이 어머니께서 최고령 탑승자가 되었다.

오늘 여행에 함께하지 못하고 마을 경로당에 남아 있는 어르신들은 고영조 이장님께서 특별식을 준비해서 배려해 주셨다고 했다.

우리 마을 출신 김길용 도의원의 배웅을 받으며 60명 마을 주민들의 여행이 시작 되었다.

필자는 당연히 젊은 사람들이 타고 있는 1호차에 몸을 실었다.

옥곡 IC를 벗어나자 이정자 여사님께서 까만 봉투 하나씩을 나눠준다. 용도를 물었더니 쓰레기를 담는 거라고...

잠시 후에 또 다른 봉투 하나가 전해진다. 그 봉투의 사용처는 금방 밝혀졌다. 떡이며 음료, 과일, 과자 등 개인한테 지급되는 음식을 담는 거였다.

미녀 삼총사의 손발이 척척 맞아 돌아가며 쉬지 않고 배달되는 주전부리들이 그 봉투에 금방 채워졌다.

‘이걸 언제 다 먹지?’고민이 끝나기도 전에 노경남 여사께서 드링크와 정체모를 알약을 하나씩 먹이고 다녔다. “××그라를 먹어야 힘이 나죠” 라는 19금을 섞어가며.

그 알약은 간을 보호 한다는 간장제라는 거였다.

“오늘 일정 쉽지 않겠구나”혼자 말을 하는데 종만이 친구 부인은 소주병을, 이금자 여사님께서는 안주를 들고 뒷좌석 쪽으로 오고 계셨다.

“자 한 잔씩 하세요” 미치겠다. 지금 오전 9시인데...

이때부터 시작된 술은 일정이 마무리 될 때까지 쉬지 않고 이어졌다.

관광버스의 볼륨이 높아지고 템포가 빠른 음악이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것이 용서가 되지 않았다.

나도 함께 흔들흔들 엉덩이와 어깨를 흔들었다. 시골살이의 애환을 토해내기 위한 몸부림을 하자는데 거절할 필요가 없었다.

한참을 달려 오늘의 목적지 신안 천사대교에 도착했다. 포토존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박원우 노인회장께서는 까만 썬글라스를 끼고 오셨다. 사모님과 팔을 높이 올려 하트를 그리는 포즈를 취하기도 하시고 손가락 하트를 만들기도 하면서 노익장(老益壯)을 보여 주신다.

젊은 사람들만 모여서 찍기도, 친한 사람끼리, 부부끼리 추억을 만들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골약동‘황방마을’이라는 표지판을 달고 있는 버스가 보이더라는 주변 사람의 말에 점심 식사 중인 그곳을 찾았다. 오랫동안 이 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사랑하는 오일택 후배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같은 광양에 살면서도 자주 보기 힘든 후배를 외지의 북적거리는 관광객들 속에서 만나니까 더 각별한 느낌이 들었다. 소주 몇 잔을 나누고 제피(초피)가 들어간 고구마순 김치와 배추김치를 얻어와 우리 일행과 나눠 먹기도 했다.

“고구마대에 제피가 들어가 놓은 께 쌈박 허시 잉” 입술을 훔치며 익동이 형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얻어온 음식이 금방 동이 나게 하는 도화선(導火線)이 되었다.

이 날 우리들의 점심은 해물탕으로 정해졌다. 생선회로 계획했었지만 습한 장마철에 혹시 모를 사고라도 생길까봐 변경을 한 것이다. 3층 식당 계단을 힘들게 지팡이를 짚고 오르는 할머니를 보면서‘다리가 떨릴 때보다 가슴이 떨릴 때 여행을 하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기도 했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무안군 화산 백련지를 찾았다. 몇 번 와 본 곳이지만 백련(白蓮)이 활짝 핀 축제기간의 분위기는 또 달랐다. 백련지 구경을 마치고 오후 4시에 출발을 하기로 했는데 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20분쯤 기다리다 종옥이 아우에게 행사 본부에 사람 찾는 방송을 해 달라고 보내 놓고 상배 형과 승두형님 나 셋이서 버스에서 내려 찾으러 다녔다.

“어~! 저기 익동이 형님 아니여?” 상배 형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관이다. 한 쪽 바지가랑이는 반쯤 걷어 올린 채 세월아 네월아 뒷짐을 지고 비틀거리며 오고 있었다. 근데 혼자가 아니었다. 옆에 종만이 친구가 있었다.

분명 한 사람이 부족 했었는데 두 사람이 걸어오고 있는게 아닌가.

“형님! 얼마나 찾으러 댕긴 줄 아요. 휴대폰을 왜 놔두고 가셨어요.”

후배들의 원망에도 특유의 익살스런 표정으로 대답을 한다.“종만이랑 술 한잔 뽈고 오는디 뭘 그리 야단인가.”

우리 마을 최고의 술꾼답다. 여유와 낭만을 즐기는 멋진 농사꾼이다.

버스로 돌아 왔을 때 기다리던 사람들의 반응은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상상에 맡기고자 한다. 예정된 시간보다 약간 늦어 졌지만 귀가 길도 즐거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요의를 자주 느껴 휴게소가 보일 때 마다 차를 세워 달라는 요구에 기사님도 흔쾌히 응해 주셨다. 행사를 주관한 마을 임원들께서 불편하게 하더라도 이해해 달라는 특별한 부탁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은 진상면 소재지에서 소고기 국밥을 먹었다.

일정을 마무리 하느라 정신없이 움직이고 계시는 미녀 삼총사에게“출발 할 때 드링크와 간장제로 속을 달래주고 소주를 먹이면서 데리고 다니더니 저녁은 확실히 속 풀이를 시켜주시네요 잉”

고마움을 담아 진심어린 인사를 드렸더니“많은 사람이 함께 해 주셔서 행복한 여행이었다”며 오히려 마을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취기와 포만감에 걸음이 부자연스러운 내 손엔 까만 봉투 하나가 들려져 있다. 집에 계시는 노모를 생각하며 과자랑 음료를 몇 개 챙겨 넣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