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행사 내빈소개 꼭 해야하나?
[기자수첩] 행사 내빈소개 꼭 해야하나?
  • 귀여운짱구
  • 승인 2007.05.10 09:16
  • 호수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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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부산 연제구에서 열린 ‘부산 연제구청장기 생활체육협의회 축구연합회 친선축구대회’는 지나친 내빈소개와 지연된 개회식 행사로 인해 축구 동호회원들이 전원 철수, 결국 대회가 무산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사태는 각종 포털사이트와 언론에 공개되면서 행사 주최 측은 전국적으로 망신살을 뻗쳤다.
얼마 전에는 순천에서 한 시의원 남편이 부인 소개가 늦었다며 주최측 관계자를 폭행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황당한 일이다.  
 
우리 지역에는 아직 이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지난 5일 광양읍 공설운동장에서는 제85회 어린이날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119 어린이 소방안전 체험교실, 페이스페인팅, 장애인 체험 한마당 등 각종 행사로 기념식 시작 전부터 수많은 가족들이 각 행사 체험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전 10시. 기념식을 알리는 방송이 시작되자 운동장에는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인 후 내외빈 소개와 함께 어린이날 시상식, 이성웅 시장, 김수성 시의회 의장 축사 등으로 30분간 진행됐다. “누구누구 오셨습니다. 잠깐 소개가 빠진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누구 참석했습니다.” 참석자 소개가 줄기차게 이어진다. 그러나 운동장은 썰렁하기만 하다.

“어린이들이 얼마나 관심 있게 본다고 내외빈 소개와 기념식을 한답니까?” “한번 쭉 돌아보세요. 기념식 지켜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꼭 저래야만 하나요?” 시민들의 푸념이다. 오히려 이런 질문이 무안할 정도로 시민들은 개회식에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이었다.
운동장에서 개회식을 유심히 지켜보니 어처구니없는 웃음만 나왔다. 행사 진행 측은 그들만의 잔치를 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어린이날 표창장 시상식도 이성웅 시장과 김수성 의장의 축사도 공허한 메아리로만 남을 뿐이었다.

화창한 이날 주변에 온갖 놀거리가 가득한 마당에 개회식에 열중하는 시민들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날 주인공은 당연히 어린이들이다. 가뜩이나 놀기 좋아하고 모처럼 엄마 아빠와 손잡고 자신들의 날을 즐기려는 이들이 잔디밭에 앉아 개회식을 지켜보고 있다면 그게 더 어색한 풍경이었으리라.
축사 역시 마찬가지다. 이날 축사를 압축해보면 “어린이는 미래의 희망이다. 오늘 어린이날 가족들과 함께 마음껏 즐겨라”는 내용이다. 너무나 뻔 한 말이요, 어린이들도 지겹게 듣는 덕담이다. 정말 어린이들이 즐겁게 놀도록 자리를 마련했다면 단 30분의 시간이라도 이날만큼은 빼앗지 말았어야 한다. 표창장 수여는 행사 전날에 대상자들을 시장실로 초대해 수여하면 해결될 일이다.

내외빈들은 이날 개회식을 생략하고 딱딱한 양복보다 간편한 옷차림으로 행사장을 둘러봤다면 어땠을까? 기념식을 할 행사가 있고 안 해도 무방한 행사가 있다. 이번 어린이날은 오히려 기념식을 생략한 것이 시에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기념식 생략 문제는 전적으로 이성웅 시장의 의지에 달려있다. 행사를 준비하는 공무원들이 먼저 기념식을 생략하자는 말을 꺼내기는 곤란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시장이 기념식을 열어야 하는지, 생략해야 하는지 판단케해야 한다. 비단 어린이날뿐만 아니다. 시에는 일 년 내내 수많은 행사가 열리고 있다.  지나친 내외빈 소개와 지루한 기념식은 언제든지 부작용을 나을 수 있다.

행사가 있으면 무리를 지어 찾아와 자신들 얼굴 알리기, 소개가 안 될 경우 화를 내는 귀빈들의 풍토, 기념식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함…광양시부터 과감히 탈피하자. 시민들은 누가 참석했는지 안했는지 보다 행사 자체를 중시 여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기는 조용한 관심에서 나오는 것임을 명심하길 바란다.